[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새 비누를 꺼내 놓는 시기가 짧아졌다. 아무래도 남편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은 대충 씻기의 달인이다. 언젠가 외출하고 돌아온 남편이 씻고 난 직후, 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손을 씻으려고 보니 비누가 전혀 젖어있지 않았다. “괜찮아. 세균을 많이 접할수록 면역력이 강해져.” 남편의 당당한 답변. 기가 막혔지만, 강제할 도리도 없었다. 화장실 문이 닫힌 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침범할 수 없는 사생활 영역이니까.

그러다 이달 초 어느 날,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왔다. “기침이 나고 어지러워.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일찍 왔어.” 나는 곧장 뒷걸음질 쳐 작은방으로 피신했다. 다행히 남편은 다음 날 아침 멀쩡해졌다. 이날 꽤 놀랐는지 남편은 적어도 얼굴과 손발만큼은 비누로 열심히 닦는 듯하다.

비누는 바이러스의 겉을 둘러싼 지질 성분을 녹여 바이러스를 파괴한다. 그래서 비눗물로 손을 깨끗이 씻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손을 씻는다고 해서 지구 곳곳에 퍼져나간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긴 불가능하다. 바이러스나 세균 역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구조부터 증식 방법, 크기까지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감염된 인간이나 동물의 몸 안에서 전파를 위해 기를 쓴다는 점이 그렇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 수 있는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을 전파할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이 병원체들은 감염된 신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감기 바이러스는 신체를 장악한 뒤 기침이나 재채기를 일으켜 또 다른 감염체로 진출을 시도하고, 어떤 세균은 설사를 하게 해 물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다. 천연두는 피부 상처를 일으켜 신체 접촉으로 병원체를 전파한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더 적극적이다. 개의 침 속에 녹아든 뒤, 개를 흥분시켜 닥치는 대로 물게 만든다.

이에 인간 역시 대응한다. 대체로 세균과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 병에 걸렸을 때 체온을 올리면 사람보다 병원균이 먼저 죽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고온의 열로 인간이 사망하기도 하고, 설사를 많이 하다 탈진해 죽기도 한다. 병원균이 자기 숙주를 죽이는 것을 두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책 ‘총, 균, 쇠’에서 “뜻하지 않은 부작용일 뿐”이라 말한다.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은 무엇보다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인간이 세균이 몸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항체를 만든 건 세균 입장에선 몹시 절망할 일일 것이다.

인간에게 퍼진 병원체들엔 공통된 특성이 있다. 짧은 시간에 인구 전체로 퍼져나가고, 대부분 급성이라 단기간에 죽거나 완치되며, 회복된 사람에게 항체가 생겨 면역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 과정이 완벽히 이행될 경우 질병은 소멸한다. 인간의 승리다. 하지만 병원체들이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리 없다. 이들은 덜 치명적인, 즉 활동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해 숙주인 피해자를 더 오래 살려둔다.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바이러스의 후손을 퍼트리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약해지는 것, 이것이 대규모 인구(동물)집단에서 바이러스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파력과 활동성이 아주 강하다. 이론적으론 많은 이들이 감염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활동성이 약화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성질 때문에 치료를 위해선 감염된 세포를 죽여야한다. 그러나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 그 세포만을 죽이는 게 쉽지는 않다. 이 때문에 세균에 비해 치료제를 만들기 어렵다. 그러니 달리 방법이 없다.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약해질 때까지 최대한 버티며 기다릴 수밖에. ‘깨끗이 손 씻는 방법’ 동영상을 남편에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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