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인천불교총연합회 간사

아침 출근시간이 늦춰져 잠깐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데, 요즘 학교에서 그린마일리지 제도가 시범시행 중에 있어 많은 학생들이 벌점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처음 듣는 제도라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 책도 뒤져보면서 마냥 신기해했는데, 막상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고충이 심각하다는 걸 보고 ‘왜 이렇게까지 교육이 정부의 제도에 의해 획일화돼야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선 학교에 교육지침을 발표하고 그린마일리지 제도를 시범 시행 중이다. 그린마일리지란 학교 내 체벌을 근절하기 위해 올해부터 적용하기로 한 학생 상벌점제를 말한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서로 싸우거나 품행이 불량할 때, 지각·무단결석·흡연 등을 했을 때 해당하는 벌점을 줘 모아진 벌점이 20점 이상이면 부모와 면담을 통해 심하면 다른 학교로 전학까지도 검토한다.

상벌점제가 체벌을 대신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으로 강구됐다지만,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할 때 학생의 주체적 교육학습권을 침해하고 학생이 단순한 통제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교과부는 상점과 벌점을 항상 함께 운영할 것, 벌점을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징벌보다 선도를 우선시할 것, 학생들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시행할 것, 규정을 몰라 위반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생활규정을 사전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충분히 공지하며 그 제정 과정부터 당사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 등 규정 마련과 시행에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일 것을 지침으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선 자기 학교에 맞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다보니 교사와 학생 간의 불신이 쌓이고, 학부모 또한 교육현장이 점점 법의 테두리만 강조해 정작 중요한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심지어 자기 벌점을 감하기 위해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고자질하고, 그 고자질을 당사자가 알게 돼 깊은 상처와 함께 갈등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또 한 학교에서는 교사가 벌점 20점이 넘은 학생에게 부모 면담을 요청하고, 해당 학생이 사정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자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규정상 자퇴를 하든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라고 질책해, 해당 학생은 정신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단다.

물론 내가 정규 교육과정을 배웠던 시기는 입도 뻥긋 못하고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시늉까지 하면서 졸업했던 때였다. 하지만 벌써 20여년이 흘렀고, 그때와는 달리 교육제도의 민주화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교육공동체 담론이 상당부분 성숙됐다.

이명박 정부가 자주 언급하는 담화가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다’ 아닐까 싶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고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만 사용되는 순간 입법 취지는 사라지고 무소불위의 폭력으로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그린마일리지 제도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체벌을 없애서 교사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취지가 있었지만, 오히려 학생들은 벌점을 면하기 위해 차라리 체벌을 택하는 등 심각한 교권 불신과 다른 차원의 인권침해를 초래한다.

법이나 제도로 획일화, 형식화하는 방법만으로는 교육의 민주화와 교육공동체의 성숙을 가져올 순 없다.
모름지기 국정 운영은 국민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보듬어주고 살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한다. 모든 제도와 정책 또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거듭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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