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한복판, 어느 병사의 하루
전쟁의 한복판, 어느 병사의 하루
  • 이영주 시민기자
  • 승인 2020.03.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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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1917

샘 멘데스 감독│2020년 개봉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4월 6일, 영국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에게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다. 독일군이 일부러 쳐놓은 함정에 빠질 위기에 처한 데본셔 연대의 메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것.

데본셔 연대에 있는 형을 구하기 위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을 떠나려는 블레이크와 달리, 단지 지도 잘 보는 블레이크 옆에서 쉬고 있었다는 이유로 지목당해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스코필드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데본셔 연대까지 가는 여정에 병사 단 두 명만 보내는 것도, 단 하루 만에 독일군이 다 철수하고 없을 것이니 지금 당장 출발하라는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의 말도 미덥지 않다.

그래도 전쟁 중 병사에게 내려진 명령이니 일단 데본셔 연대를 향해 떠나는 두 사람. 늦어도 다음날 아침까지는 데본셔 연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해야만 영국군 1600명을 살릴 수 있다.

‘아메리칸 뷰티’와 ‘007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샘 멘데스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 ‘1917’은 감독의 할아버지가 직접 겪고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전쟁영화다.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스펙터클에 집중하는 데 반해, 샘 멘데스의 ‘1917’은 이전까지의 전쟁영화와는 매우 다른 노선을 걷는다.

‘1917’의 카메라는 오로지 주인공 스코필드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스코필드를 중심으로만 움직인다. 영화 전체를 원 숏 원 컷처럼 롱테이크로 촬영한 이 영화는 스코필드가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그의 주위를 360도 회전하며 전쟁터 곳곳과 그가 마주치는 영국군, 독일군,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라기보다는 마치 비디오게임 같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스코필드를 플레이어로 관객이 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느낌을 주기에 어느 전쟁영화보다 몰입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이라고 하기엔 아이템이 너무 부족하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주어진 무기는 총과 칼, 수류탄뿐이다. 식량도 없고 물 한 통이 전부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나침반과 지도에만 의지해 코앞에서 독일군이 총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를 통과해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해야하다니, 아주 고약한 난도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보통 게임에서는 하면 할수록 레벨이 올라가 능력치가 올라가기 마련일 텐데, 두 병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지고 있던 아이템마저, 심지어 동료마저 잃는 수난을 겪는다.

게다가 데본셔 연대까지 가는 여정은 에린무어 장군의 명령이 과연 유효한 것인지조차 의심하게 한다. 다 철수했을 거라던 독일군의 흔적은 여전히 아주 가까이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우연히 마주친 영국군들은 스코필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곳곳에서 출몰하는 위기상황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스코필드는 끝끝내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병사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겠지.

명령을 하달 받는 순간부터 기껍지도 미덥지도 않았던 스코필드뿐 아니라 그의 시선에 걸린 영국군 중 어느 한 사람도, 심지어 장교들조차도 사명감이나 확신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는 이는 없었다. 오랜 전투로 피로에 찌든 그들을 보며, 확신에 차서 공격을 지시하던 메켄지 중령마저도 그것이 전쟁에 대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이 전쟁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서였음을 확인하며, 세상 쓸 데 없는 게 전쟁임을 다시금 깨달았다고나 할까.

샘 멘데스의 ‘1917’은 아카데미 촬영상, 시각효과상 수상작답게 원 숏 원 컷처럼 보이는 유려한 롱테이크 촬영으로 관객들의 몰입도로 최고조로 높인, 지금까지의 전쟁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쟁의 무용함을 보여주는 반전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서사와 캐릭터가 너무 약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