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겨레하나인천본부 사무부처장

▲ 박경수 겨레하나인천본부 사무부처장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벌써 9년이 흘렀다. 그동안 참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10여년 전 대학을 다닐 때 과 동기가 ‘통일의 꽃’ 임수경씨 다음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아니 월북을 했다. 며칠 후 그 동기는 남쪽으로 내려와 밀입국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재판장에서 “평범하지 않은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세상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이후 천지개벽했다. 그동안 우리에게 금지된,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허락됐다.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청년학생협력단)이 참가했다. 물론 그 전에 부산아시안게임에도 ‘미녀 응원단’이 왔었기에 별로 특별할 게 없다. 그래도 인천겨레하나 회원들을 포함한 500여명의 인천시민들이 청년학생협력단과 함께 손 맞잡고 운동장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몇 달 후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대동강이 옆으로 흐르는 평양 5.1경기장에서 공연된 ‘대집단체조와 아리랑’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그것도 남과 북 정부의 보호 아래서 말이다.

최초의 민간 방문단은 평양 시내 곳곳에 위치한 유적지를 방문했다. 우리의 관심은 유적지보다는 시내의 건물, 간판, 시민들의 표정에 더 쏠렸다. 방문하는 곳마다 북측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녘을 방문했다. 금강산 만해도 약 200만명이 올랐다. 이런 왕래의 힘으로 남측에서 평양에 북녘어린이를 위한 빵공장과 치과병원을 건립했다.

경제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성공단 사업이다.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남북경협의 토대인 개성공단을 조성했다.

인천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진출했다. 북측에서는 6·15공동선언 정신에 기초해 남측 기업에 특혜를 줬다. 토지 사용료를 50년간 받지 않기로 하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93개 업체에서 2억 5000만 달러 상당을 생산했다.

6·15공동선언에 의해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연결됐다. 이 철도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을 여행할 수도 있고, 우리 기업들이 생산한 물품을 수출도 할 수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만큼 남북 사이의 긴장도 없어지고 평화와 통일도 한층 다가놨다. 이것이 바로 6·15남북공동선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면서 이제는 북한을 방문하는 길이 거의 막혔다. 개성공단도 존폐 위기에 놓였다. 경의선과 동해선에 기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서해상에서는 긴장이 고조돼 일촉즉발이다.

반만년 역사 속에 분단은 ‘찰나’에 불과하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서 거시적 안목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이명박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다. 그 결단은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6·15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해 예전과 같이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통일로 함께 번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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