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감염병의 시대, 가장 민주적인 극복을 위하여
[시론] 감염병의 시대, 가장 민주적인 극복을 위하여
  • 인천투데이
  • 승인 2020.03.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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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근대 이전까지, 죽음은 불가항력의 영역에 가까웠다. 근대 의학의 발전은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질병으로서 각각의 명칭을 부여받게 됐다. 바야흐로 죽음을 규명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이었던 질병이 호출되면서 이전보다 강력한 공포가 생산되기도 했다. 수많은 질병에 이름이 부여됐지만, 근대 의학이 그 모든 원인과 치료를 완벽하게 수행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여전히 우리의 의학은 인간 신체에 작용하는 모든 질병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대 사람들보다는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의학의 힘으로 질병에 따른 증세를 완화하고 지연(遲延)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감염병은 바로 이러한 신뢰체계를 왜곡하고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전체주의 시대에 감염병은 국가적 차원의 적이자 악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국가의 핵심적 자원인 집단적 신체로서 인구를 격감시키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행정력이 총동원됐고, 많은 경우 폭력이 뒤따랐다. 통제할 수 없는 감염병에 대해서는 ‘차단’이라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전체주의 시대의 잔재를 중국의 정책에서 다시 발견하고 있다.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대도시가 물리적으로 봉쇄됐고, 폭력에 가까운 강력한 통제가 이어졌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서 그것이 가장 먼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국가 전체를 패닉에 가까운 상황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인권유린에 가까운 정책들을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대처는 아직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대구지역 신천지교회를 출발점으로 대규모 감염 사태가 야기됐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코로나19에 대응해 가장 투명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염병의 상황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길은 바로 침착한 대응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가장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누군가의 고립을 합리화하거나 인권유린을 정책적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무엇인가 칭찬해야한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폭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가장 쉽지만, 그래서 오히려 위험한 방법이다. 감염병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병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길은 바로 전 사회의 합의와 협업에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부의 행정력만으로도 국민의 시민의식 만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관민이 협력하고 일상에서 위생을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바꾼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미세먼지로 인해 생필품이 된 마스크가 이제는 생존 아이템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수많은 홍보에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던 손 씻기 역시 필수적 생활수칙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감기나 독감 등 일상적 질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뜻밖의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비록 ‘웃픈’ 상황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바꿨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믿어보자. 아니, 절실히 믿고 싶다. 우리가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이 감염병의 시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