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회장님 댁 둘째 아들이 현 정부의 선봉대를 자처하고 나서 기자들에게 막말을 일삼을 때부터 알아봤다. 소위 ‘예술’ 했다는 사람이 저렇게 앞뒤 꽉 막힌 외곬 장관일 수는 없다고 혀를 끌끌 찼더니만, 결국 대형 사고를 쳤다.

문광부에 미운털, 한국예술종합학교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단체장 중 마지막까지 현직을 유지해왔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황지우 총장이 지난달 19일 사퇴함으로써 현 정부의 문화계 인사 물갈이를 말끔히 마무리했다.

한예종이 이렇게 유인촌 문광부장관의 직접 집도하에 대수술에 들어가게 된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 작년 촛불 이후, 문광부에 한예종은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문화계 보수인사들 입에서 ‘한예종은 문화예술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이 예언한 것처럼, 문광부의 표적 감사가 있었고, 황지우 총장이 물러났다.

물론 한예종은 정부 산하 국립학교였다. 그러나 국립이라고 해서 정부부처가 총장을 갈아치우고 교과과정에 개입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어느 분야보다도 자유로워야 할 예술 분야에서 이 따위 검열은 차라리 ‘예술을 하지 말라’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테러다.

‘한예종’ 사태와 닮은꼴, 인천여성영화제
한예종 사태를 목도하며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쓰리고 억장이 무너진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인천여성영화제가 마주한 현실과 다른 듯하지만 매우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인천여성영화제는 비록 5년째 맞는 걸음마 수준의 신생 영화제이지만, 문화예술의 불모지 인천에서 매년 3000~4000에 이르는 관객동원력을 보여주며 시민이 만드는 시민영화제로서 자리매김해왔다. 특히 주류 상업영화에서는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었던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시선을 매우 대중적이고 문턱 낮은(인천여성영화제는 상영료가 무료다.) 열린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던 사람으로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회 영화제부터 시작해 작년 4회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인천여성영화제는 여타 관 주도 행사에 비교할 수도 없는 액수이지만 인천시로부터 한 회당 적게는 600만원에서 1500만원가량을 지원받아왔다. 그런데 5회째를 맞는 올해 영화제는 10원 한 장도 지원받지 못하게 됐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단체가 광우병대책위에 가입돼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지속돼오던 지원금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현 정부는 역사의 순리와 이치 알아둬야
이미 올해 초 행정안전부는 촛불시위 참여단체를 불법폭력시위 참여단체로 낙인찍고 이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군중이 6월 10일에만 100만이 넘는데 그 국민들을 모두 불법폭력시위 집단으로 매도하는 ‘불법 폭력적’ 발상도 우습거니와, 돈줄을 쥐고 정부 시책에 순응하는 단체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정부 시책과 다른 목소리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시 말해 시민을 정부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는 ‘불법 폭력적’ 인식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현 정부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 학교의 교과과정도 뒤집고 총장도 갈아치운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시민단체는 이제껏 지급해온 정부보조금을 미끼로 숨통을 죈다. 정부에 ‘미운털’ 박힌 학교, 단체, 행사들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현 정부의 행보엔 거침이 없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지금까지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을 곰곰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껏 자신과 다른 목소리, 즉 ‘미운털’을 뽑아내는 데 정력을 소진했던 정권치고 제대로 살아남은 정권은 없었다. 미운털 뽑는 데 정신 팔렸던 독재정권은 결국은 미운털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이것이 역사의 순리이고 이치임을 똑똑히 알아두기 바란다.
▲ 이영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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