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근린공원 있지만 실내체육공간 전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아이들 ‘위험천만’

[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마음놓고 축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천 연수구 연수1동 문학산 아래 함박마을은 러시아어와 중국어가 익숙하게 보인다. 마을 곳곳에 있는 현수막과 안내판에도 러시아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게 간판도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혼재돼 있다.

이곳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 3대가 모여살고 있으며, 광주, 안산에도 고려인들이 모여 산다. 이곳은 마을 면적에 비해 최대 고려인 밀집지역이다.

이곳에는 고려인 약 6000여 명이 모여 있다. 3대가 모여살기 때문에 연령층도 다양하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3~40대를 제외하고는, 대낮에 아이들과 노인들이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천시가 고려인 통합지원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만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들은 눈치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지난 7일, ‘신종 코로나’로 일주일 동안 휴관한 고려인문화원을 찾았다. 약속한 대로 함박마을에서 지내는 아이들과 종일 마을에만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려인문화원을 찾아가 만난 아이들은 다소 경직된 상태였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방 알란’, ‘황 예카테리나’라고 소개했다.

실내체육공간이나 야외활동공간 매우 부족

마리공원 있지만 공간 좁아…안전한 체육공간 필요

방 알란과 황 예카테리나는 올해로 11살이다. 알란은 함박초등학교를 다닌다. 일반적인 학교 등교시간은 9시지만, 알란은 그보다는 서둘러 학교에 간다고 했다. “7시 반에 학교에 가요. 그래야 다른 친구들하고 러시아어로 편하게 떠들 수 있으니까요.”

한겨울에 마리공원에 나와 노는 아이들. 공놀이를 하고 있다.

알란은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마을 뒤편에 있는 마리공원으로 간다. 마리공원은 함박마을 공용 주차장 위에 설치된 작은 공원이다.

“친구들은 15명 정도에요. 마리공원에 가서 공놀이나 축구를 해요. 근데 겨울은 너무 춥고, 또 공원에는 쓰레기 냄새랑 담배 냄새가 많이 나요.”

알란의 말대로 인터뷰가 끝나고 찾아간 마리공원은 꽤 비좁았다. 지난 7일이 올해 겨울 중 상당히 추운 편이었던 데도 불구하고,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생활체육시설이 설치된 작은 공터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대여섯명이 넘는 아이들이 놀기에는 매우 좁은 장소였다.

마리공원 금연을 홍보하는 현수막. 러시아어가 같이 쓰여 있다.

게다가 담배냄새를 불평하던 알란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 공원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연수구보건소에서 건 것인데, 이 현수막도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같이 적혀 있었다.

함박공동육아나눔터 있지만 육아지원시설 없다고 봐야

장난감·동화책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원 매우 부족

황 예카테리나는 문남초등학교에 다닌다. 학교는 화요일만 2시 30분, 평일은 1시 40분에 끝난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간다고 했다. 예카테리나는 학원이 2~3시에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간다고 했다.

“한 살 5개월 된 동생이 있어요. 언니랑 언니 아기랑 같이 있어요.”

예카테리나의 언니는 올해 22살이다. 11살인 예카테리나는 언니를 도와 아기들을 돌본다. 부모님은 모두 일하러 나갔다. 예카테리나는 그래도 동생들과 노는 게 재밌다고 한다.

함박마을에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육아시설이 부족하다. 특히 재러동포 후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연수구 관계자는 “함박공동육아나눔터가 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보육기관이 있지만 소규모다”라며 “사실상 함박마을에는 고려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예카테리나는 밖에서 놀지 못하는 대신 책읽기를 좋아한다. 학교 공부도 재밌고,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라고 했다. 예카테리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주로 학교에 있는 도서관에 간다고 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가면 동생을 돌봐야 한다. 그나마 있는 어린이도서관도 혼자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횡단보도 있지만 신호등 없어, 아이들끼리 다니기 매우 위험

주택용지로 개발됐지만 주차공간 부족, 길가에 차 주차

이전에도 마을을 몇 번 방문했지만, 아이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바로 차와 사람들이 혼재돼 거리를 다니는 모습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고 횡단보도도 있었지만, 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횡단보도만 있을 뿐, 도로변에 차량이 주차돼 있고 차가 지나감에도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건너고 있다.

알란은 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두운 골목길이었는데, 큰 차가 옆을 막 지나갔어요. 무서워서 제가 먼저 피했어요”

낮은 괜찮지만, 해가 지고 나면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가로등 정비사업으로 동네가 밝아졌다고는 하지만, 신호등이 없어 사람들은 여전히 자동차와 뒤엉켜 다닌다.

함박마을은 1995년 지구단위계획으로 조성된 단독주택용지다. 함박마을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주거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입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함박마을 공용 주차장이 있지만 그 공간도 부족해 사람들은 길가에 차를 세운다. 신호등도 없고, 도로변에 주차된 차에 가려져 있어 길을 건너려면 도로변까지 나와야 한다. 자연히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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