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 서리

[인천투데이] 바야흐로 평화통일 교육을 하는 시대다. 교육부는 법정 통일교육주간을 지정해 운영한다. 인천시 포함 광역자치단체 11개는 ‘평화통일 교육 활성화 조례’를 만들어 평화통일 교육과 남북 교육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온 인천지역 교사 네 명이 얼마 전 교단에서 쫓겨났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통일과 남북 교육 교류에 힘써온 교사들의 목을 겨눈 탓이다.

학생들과 작별인사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방학 중 학교를 떠나야하는 교사들과 영문을 모른 채 개학을 맞이할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긴 판결이었다.

2020년 1월 9일,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7조 5항을 들이 민 검찰과 이를 인정한 항소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교사 네 명은 자동 면직됐다. 파면이다. 평화통일을 바라며 소신껏 활동해온 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단죄 사유는 ‘이적표현물 소지’였다. 2005년 정부 공식 남북 교육 교류사업을 진행할 당시 호텔 앞 책방에서 구입한 ‘북한 서적’이 문제가 됐다. ‘봉이 김선달’과 ‘조선의 력사’ 등 어린이용 만화책은 들여올 당시 검열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 사법부는 이를 이적표현물로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열람 가능한 책이다.

어린이용 만화책을 이적표현물로 둔갑시킨 발단은 국가정보원이었다. 국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한 원세훈의 지휘아래 3년간 표적수사를 벌였고, 자료를 넘겨받은 공안검찰은 2012년 1월 교사들의 집과 학교를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권 출범을 며칠 앞두고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를 씌워 불구속 기소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시기와 맞물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끼워 맞추기식 수사와 기소는 허점이 수두룩했다. 공안검찰은 이적단체 결성과 이적행위에 아무런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고, 엉터리 증인을 내세워 법정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공소사실 대부분도 허위사실로 인정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이적단체 구성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고, 이적표현물 제작ㆍ반포 혐의는 검찰 스스로 철회해야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적표현물 소지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는 해당 혐의마저 일부 무죄로 보고 감형했지만 다른 표현물을 문제 삼아 유죄 판결했다. 대법원은 교사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돼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2017년 수원지방법원 김도요 판사가 이적표현물 소지 등에 관한 위헌심판제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끝내 공안검찰의 손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의아한 일이다.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만난 문재인 대통령이나 북한과 교류를 주장한 정치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의 위선이 느껴진다.

전두환 시절 대표적 국가보안법 탄압 사례인 ‘아람회 사건’은 대법에서 유죄 확정됐다가 2009년 재심에서 관련 교사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사법부의 과오가 인정돼 국가 배상판결 난 바 있다. 이번 판결 역시 머지않아 역사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한다’고 했던 정부에서도, 한 때 인권변호사를 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에 그 뿌리를 둔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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