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기시장 '삼복 떡고을' 권민철 사장
한 자리서 음식장사 30여년, 해외서도 떡 주문
마진 덜 남아도 국내산 곡물만 고집, 품질 자부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명절을 맞아 전통시장이 오랜만에 활기를 찾았다.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인천 미추홀구 신기시장은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과일과 수산물, 건어물, 떡 등 차례를 지낼 물품을 거래하느라 시장 상인들도 오랜만에 얼굴 주름이 펴졌다. 명절 대목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흡족할 때가 있다. 신기시장은 인천에서도 제법 활성화 된 전통시장 중 한 곳이다. 대형 마트와는 다른 정서적 안정감도 준다.

신기사장은 최근 주변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3000여 세대 이상이 타 지역으로 이사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 오던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신기시장 '삼복 떡고을' 권민철 사장

품질·신뢰 등 기본, 국내산 재료 고집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신기시장 입구 쪽에 위치한 삼복 떡고을 권민철(45) 사장은 전통시장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며 낙담했다. 그렇다고 장사를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품질과 신뢰로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생각이다.

“가게 품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특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양심을 지켜야 한다. 우리 떡집은 쌀과 팥, 서리태 등 국내산으로만 떡을 만든다. 공장 떡보다 가격이 싸고 가게에서 바로 만들기 때문에 신선하다. 방부처리도 하지 않아 건강에도 좋다.”

권 사장은 쌀도 햅쌀만 사용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이 알고 있다.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다.

장사 마진이 덜 남아도 수십 년간 지켜온 철칙이다. 상거래에서 한번 잃은 신뢰는 되돌릴 수 없다. 권 사장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삼복 떡고을에는 유독 단골들이 많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에 한 손님이 떡집을 찾아 진열된 떡을 고르면서 말했다.

“난 여기만 온다. 떡집은 이 곳이 최고다. 다른 곳보다 맛도 좋고 인심도 후하다”

권 사장은 손님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명절 대목을 맞아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오랜만에 활기를 찾는 것 같아 권 사장이 매우 흡족해 했다. 주문량이 많아 배달 다니는 것도 눈코 뜰 새가 없다.

삼복 떡고을은 국내산 곡물을 사용해 떡 16종류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한 곳에서 30여년 장사, 해외 주문 단골도 있어

신기시장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하는 권 사장은 20대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IMF시절 회사 운영이 힘들어져 자의반 타의반 퇴사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난 울산 언양이 고향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인천으로 와서 자랐다. 인천에 낙원떡집을 하던 큰아버지가 계신데, 어릴 때부터 일을 도와드리며 떡 만드는 일을 했다. 이제는 직업이 됐다.”

권 사장이 2006년부터 떡집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같은 자리에 식당이 있었는데, 권 사장의 양친이 하던 가게다. 1988년 개업해서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다.

“막상 직장을 그만두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떡집을 해보고 싶었다. 당시 만두파동이 있어서 부모님도 힘들어 하던 시절인데, 업종을 바꿔 어머니와 떡집을 시작했다.”

양친까지 더하면 한 곳에서 대를 이어 장사를 한 기간은 30년이 훌쩍 넘었다. 당연히 단골이 있기 마련인데, 권 사장은 해외에서도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신기해했다.

“오래 장사하니까 좋은 점은 믿음으로 찾아준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가게는 유독 해외 결혼을 해서 가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국내에 있는 친인척들에게 떡을 주문하고, 그 사람들은 해외 나갈 때 냉동포장 등을 해서 가져간다.”

신기한 점은 또 있다고 했다. 요즘 중국 관광객들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시장까지 버스가 온다. 여행객들은 환승 시간에 가족 단위로 잠시 들려서 먹거리를 즐기거나 쇼핑을 하고 간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비교적 많아졌다. 공항에서 여기를 들리는 버스가 있는데 환승 시간을 이용해 찾아온다. 또 단체로도 전통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오기도 한다.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다.”

“고객 서비스 만족 높이는 등 변해야”

권민철 사장은 "전통시장도 고객 서비스 만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기시장은 대형마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식자재마트가 생기면 영향이 있는데, 외부 환경적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내적인 변화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변 재개발사업으로 주민들 발길이 줄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환경만 탓할 것은 아니고, 전통시장도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야 한다. 고객 서비스 만족을 위해 손님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

전통시장은 현대화사업 등으로 지붕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환경 개선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권 사장은 보다 공영주차장 증설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상인들도 서비스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기시장은 특화된 사업으로 시장 한편에 야구박물관도 꾸몄다. 인천SK 팬들이 문학구장 경기를 관람하고 시장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잘 갖춰지지 않았지만 박물관을 조성했다고 한다.

“야구박물관도 조성하고 날씨가 풀리면 도깨비 야시장도 추진된다. 그리고 젊은 상인을 중심으로 청년회도 구성해 봉사활동을 한다. 시장의 환경 개선을 스스로 이끌어가겠다는 생각이다.”

권 사장은 청년회 조직을 통해 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인근 학교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바자회를 열기도 했다. 또, 인천보육원에 정기적으로 식료품을 전하기도 했다.

설 명절 떡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떡국떡이다.

불경기 등 힘들지만 '가족사랑'으로 버텨

권 사장은 장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특별한 여가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생하신 부모님 덕에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평소 잘 해드리지 못해 많이 아쉬운데 이제는 시간을 쪼개서 함께 할 수 있는 여가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장사한다는 핑계로 신경 못썼는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올해부터라도 노력하겠다.”

떡집의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한다. 설 명절에는 특히 떡국떡 주문이 많기 때문에 자는 시간을 빼면 가게에 항상 불을 켜야 한다. 힘든 일의 연속이다. 불경기이지만 가족사랑으로 버틴다고 했다. 

권 사장은 힘들 때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했다. 

“어느 날 경기도 화성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께서 떡을 사간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와병 중에 떡을 먹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인천가지 찾아왔다. 3시간 걸리는 먼 거리를 온 할머니 마음이 느껴졌다. 가족사랑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지금도 그 분은 가끔 떡을 주문해 가져간다.”

때마침 가게 안쪽에서는 하얀 떡국떡이 길쭉하게 빠져나와 물속으로 들어갔다. 인터뷰를 끝낼 즈음 맛보라며 준 갓 나온 떡국떡이 하얀 김을 내뿜었다.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따뜻하고 고소한 향이 입에 맴돌았다.

인천 미추홀구 신기시장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