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지명주 산곡동 한양2차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6년째 학교 운동부 선수들 무료 교정ㆍ벌침시술 봉사

▲인천산곡중학교 레슬링부 학생을 치료하고 있는 지명주 회장.
학교 운동부 선수들의 아픔을 같이하는 부평구아파트연합회 회원이 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가 되면 검은 가방을 메고 학교로 출근하는 사람. 6년째 ‘검은 가방’으로 불리는 지명주 산곡동 한양2차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삶을 살펴봤다.

화요일 오후, 그가 산곡중학교 체육관에 도착하자 레슬링 훈련복을 착용한 중학생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며 여기저기서 인사한다. ‘검은 가방’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체육관 사무실로 향한다.

20평 남짓한 체육관 사무실에는 선수들의 몸을 교정할 수 있는 교정대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의무기록을 할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검은 가방’은 익숙하게 가방을 벗어들고는 안에서 의무기록지 한 권과 벌통, 핀셋을 꺼내 놓는다. 반쯤 물이 찬 컵 한 개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모든 것이 이미 준비가 돼있는 듯 ‘검은 가방’은 앉자마자 겉옷을 벗고 손목아대(Wrist Band)를 차고는 치료할 선수들의 명단을 점검한다.

“정웅철” ‘검은 가방’이 호명하자 교정대로 올라선다. ‘검은 가방’은 기록지와 현재 상태를 대조하고는 시술을 시작한다. 요추 3~5번과 선추를 교정한 후 벌통에서 벌 한 마리를 꺼내 발침자법(拔針刺法)으로 몇 군데 시술한다. 치료가 끝난 후 정웅철 학생은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제자리로 간다. 이어 다음 선수 치료가 진행된다.

‘검은 가방’이 산곡중학교 레슬링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30년간 몸담아왔던 군부대를 떠나면서부터다. 벌써 만5년이 지났다. 군의무(軍醫務) 장교인 그가 전역하면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던 중 산곡중학교장배 전국레슬링대회를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됐다.

본래 레슬링이란 운동은 상당히 과격해 부상자가 속출하는데, 그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체육교정사ㆍ카이로프랙틱(약물이나 수술을 사용하지 않고, 예방과 유지적인 측면에 역점을 두어 영양과 운동을 겸한, 신경ㆍ근육ㆍ골격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치료법)사ㆍ중의사ㆍ의무기록사 등 의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격증은 선수들 치료에 꼭 부합하는 것이라 이런 기술을 사장(死藏)시키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는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1급 사회복지사로, 석사학위 논문으로 그때까지 불모지였던 봉침에 대한 논문인 ‘노인복지기관의 의료서비스 증진을 위한 연구-대체의학 봉침의 활용을 중심으로’를 써 학위를 취득했으며, 특히 논문에서 다룬 퇴행성․류마티스성 관절염의 치료로 벌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현재 인천남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에게도 주1회 교정․벌침시술을 하고 있다. 산곡 중학교에서 연을 맺은 이준호 교장이 남고 교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해 남고에서 창단한 축구부 선수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덕인지 놀랍게도 2007년에 창단한 풋내기 축구부가 2008년 말에는 전국4강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의 치료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료 봉사다. 일주일에 200마리 이상의 벌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무료로 하느냐는 질문에 “국가에서 연금을 충분히 주니까 10%는 사회에 환원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하며 아주 당연시하는 그다.

그리고는 “물론 운동선수라 힘도 들지요. 특히 동산고등학교나 광성고등학교 선수들은 몸이 상당히 단련돼서 교정해주는 데 힘도 들지만 저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면서 피식 웃는다.

그의 말은 더 이어졌다.

“제가 20년 전에 우연히 벌과 만났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미치기를 잘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한의학을 하면서 소독이란 문제를 참으로 많이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벌은 소독할 필요가 없어요. 1회용이구요. 더구나 한의학에서는 침(針)과 뜸(灸)과 약(藥)을 분리해야하는데 벌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벌 속에는 항생제(페니실린의 500~1200배)를 포함한 많은 약성분이 있으며, 피부에 자극을 주면 열이 나는 뜸 효과와 경혈에 자극을 주는 침 효과를 한 번에 낼 수가 있으니까요. 혹자는 부작용을 염려하는데 물론 부작용도 있어요. 그렇지만 체질을 잘 알고만 쓰면, 그리고 최소한의 해부학만 익혀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벌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그는 교정을 하려면 본인이 튼튼해야한다며,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근육질이다.

그는 “시술자가 허약하면 치료가 되지 않아요. 일단 환자가 믿음이 가지 않잖아요. 저와 같이 수기(手技)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은 몸부터 만들어야 버팁니다. 시술자가 골골해서 되겠어요?”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은 할 일로 꽉 차있다. 강의하랴, 연구서 작성하랴, 봉사하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일까지. 그러나 그는 항상 여유롭다. 그 여유의 밑바탕은 봉사에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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