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2019년 마지막 금요일 밤. 열대여섯 명이 부평의 한 작은도서관에 모였다. ‘봄눈별’이라는 뮤지션의 연주회가 열린다기에 며칠 전부터 이날을 기다렸다. 연주회에 앞서 봄눈별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7시 저녁식사, 8시 연주회, 참가비 1만 원.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함께 할 사람은 미리 와도 좋다고 했다. 30분 전에 갔더니 긴 탁자에 손질한 채소들이 올려와 있고 커다란 솥에선 무언가 끓고 있었다. 봄눈별은 도서관 안쪽 공간에서 리허설을 하는 모양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이 들렸다.

봄눈별은 칼림바와 인디언 플루트, 텅드럼처럼 음역대가 좁고 울림이 있는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나는 그의 팬인 ㅂ언니의 소개로 3년 전에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다. 가사와 정해진 선율 없이 즉흥으로 연주하는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명상하듯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마음이 분주할 땐 그의 연주를 찾아 듣곤 했다. 이날 연주회는 ㅂ언니의 초청으로 열렸다. 멀리 경상도에서 생활하는 그가 인천에 왔으니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 온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솥에서 끓고 있는 요리를 조용히 기다렸다.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요리, 바로 토마토떡국이었다. 봄눈별은 연습 중간 중간 솥을 열며 상태를 확인했다. 솥 안에는 토마토와 콩나물이든 육수가 끓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 감자와 당근, 느타리버섯을 넣고 끓이다가 된장, 토마토케첩, 간장으로 간을 했다. 토마토케첩과 된장이라. 상상해본 적 없고 맛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조합이었다. 7시가 거의 다 됐을 무렵, 그가 떡국떡을 넣었다. 떡이 말랑해질 때까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도 없이 간을 봤다. 열댓 명의 불안한 눈길 속에, 그는 긴장한 듯 민망한 듯 자주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떡국이 완성됐다. 우리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국을 옆 사람에게 전달했다. 긴장을 한 건 요리한 봄눈별만이 아니었다. 다들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앞에 두고, 혹여 입맛에 맞지 않아 대접을 비울 수 없다면, 그래서 저 커다란 솥 가득 끓인 떡국이 많이 남는 참사가 벌어진다면, 그래서 봄눈별이 미안해하거나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도 그랬다. 된장과 케첩이 섞인 냄새부터 묘했으니까. 일단 국물을 맛봤다. 된장의 구수함과 케첩의 새콤한 맛이 묘하게 어울렸다. 단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생소한 맛인데 자꾸 국물을 떠 넣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오! 꽤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떤 이는 5분도 안 돼 그릇을 비우고 한 그릇을 더 먹었다. 나도 그랬다. 그제야 봄눈별의 표정이 풀렸다.

사실 내가 그의 팬이 된 건 음악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그가 독립출판으로 펴낸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성인이 돼 더는 견딜 수 없던 그는 상담치료를 받았다. 상처받은 자로서, 정신과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았다. 생명을 해치지 않는 채식에 자연스레 눈떴다. ‘완전 채식’을 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악기를 연주했다. 그의 이야기와 음악은 내 마음에도 깊이 와 닿았다.

뱃속까지 따뜻해진 우리는 한층 느긋한 마음으로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는 음악을 듣다가 졸리면 누워서 자도 좋다고 했다. 커다란 쇠관을 손으로 두드릴 때 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텅드럼의 맑은 울림, 나무피리의 묵직한 선율, 오르골 같은 소리가 나는 칼림바 연주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내 앞에 앉은 이는 연신 눈물을 닦았다.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 나도 그랬다.

한 시간의 연주와 대화가 끝났다. 세밑 지친 마음과 피곤이 다 사라진 듯했다. 나는 헌책방에서 산 그의 책에 사인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그 책을 올려뒀다. 지칠 때면 토마토떡국을 나에게 대접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 심혜진은 3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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