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을 이기지 못한 ‘바보 노무현’은 죽음으로 답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남겼지만, 국민들은 그가 이제 와서 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힘들었음을 알고 있다. 고난을 운명이라 여겼던 그가 이제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은 비통하다. 권력에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냈던 서민 대통령 노무현의 결말이 처연하다.

그는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본 적이 없다. 국민 스스로 책임지고, 주장하는 참여의 정치를 노무현 정권의 최고 가치로 놓았다. 평검사들과 대등한 자리에서의 토론을 두려움 없이 생방송을 통해 진행했고, 그 자리에서 젊은 법률가들의 맥락 잃은 비난도 감당해냈다.

그의 말은 ‘본인은’으로 시작했던 지난 세월의 통치자와 달리, ‘나는’ 또는 ‘저는’이라는 서민들의 호칭으로 자신을 낮게 위치 지우면서 시작됐다.

유달리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서민적 풍모는 국민들에게는 인간미 있는 대통령으로 다가갔지만,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과 기득권세력에게는 천박함 또는 가벼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들조차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탈피에 의해 무한정한 혜택을 누렸다. 대통령을 향해 공식석상에서 공당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입에 담을 수 없는 무도한 말로 대통령을 조롱해도 과거처럼 정치적 탄압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말의 전쟁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권위주의 정치를 타파하려 했으나, 정적들은 대통령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에 몰두했으며,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들의 발등을 내리치는 결과를 불러왔지만, 이후 도발은 보수언론을 통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집단들이 드디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1년 후, 유능한 검찰과 노련한 언론의 상호부조 아래서 서민들의 벗이었던 ‘바보 노무현’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목숨을 던져야할 만큼 부패하고 추잡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스스로 투명하고자 노력해왔고, 고난의 길을 택한 어리석은 사람이 그였음은 누구나 안다. 도덕성과 원칙으로 집권자가 되었던 노무현이 수십억의 돈에 급격히 눈이 멀 수 있는가? 오히려 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에 힘겨웠고, 자신들과 식구 같았던 사람들 속에서 긴장감을 잃었던 것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참혹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패한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그에게는 치명적일 정도로 그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권력투쟁 속에서 소진된 자신의 영혼을 되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소탈한 꿈을 꾸면서 봉화마을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퇴임 후의 인간 노무현은, 대통령 노무현보다 훨씬 매력 있는 인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손자와 산책하는 장면은 권력자의 소탈한 복귀였다. 최고 권력자가 서민들에게 다시 내려오는 아름다운 현실이었다.

그런 그가 정권을 향해 일갈할 때 권력에게는 불편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 시기라면 다소 불쾌할지라도 “민주주의는 그런 것” 정도로 끝날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권력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오로지 ‘법’과 ‘공권력’의 등장이 있을 뿐이다. 용산의 참사와 촛불시민들에 대한 폭압 사냥은 이 정권이 얼마나 팍팍하고 야멸찬 권력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국민을 상대로 토끼몰이를 펴는 이명박 정권의 법치의 칼날은 노무현을 비껴가지 않았다. 오히려 정 조준해 갔다. 그리고 매우 성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마침내 법적인 처벌을 넘어 생명의 종식으로 끝났다.

이제 그가 떠났으니, 피의자 노무현에 대한 법적요건은 사라졌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성찰은 남아 있다. 누구도 눈물로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치적 동지들과 측근 그리고 피를 나눈 혈육들조차 그를 지켜줄 수 없었다면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고독과 싸워야했던 것일까?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치욕 속에서, 몸을 던져 보여주려 했던 그의 마지막 외침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던 그의 유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원망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의 눈물 한 방울이 그저 그를 추억하고 자신을 위안하는 허망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잔혹한 정치를 종식시키려 했으나, 잔혹한 정치에 의해 죽어간 그는 우리의 소중한 ‘인간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 인태연
<부평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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