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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남편과 동태탕을 먹었다. 다음날이라고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딱히 서운하거나 아쉽지도 않다. 아이나 애인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날을 특별하게 보내는 데 그동안 너무 많은 열정을 써버려서 이젠 뭘 해도 시큰둥한 건지도 모른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권태.

어렸을 때 부모님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방 안에 색색의 전구와 반짝거리는 솔을 달았다. 어느 해엔가 마당의 사철나무를 잘라 트리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엔 머리맡에 과자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일곱 살, 동화책을 읽고 산타클로스가 부모님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 그렇지. 산타가 포장지도 아닌 검은 비닐봉지에 과자를 담아줄 리 없지. 20대의 크리스마스는 대부분 술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보냈다.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해엔 약속을 잡지 못했다. 허전한 마음에 그냥 집에 갈 수 없어, 마침 눈에 보이는 치과에 들어갔다. 가끔 잇몸을 건드려 속을 썩이던 사랑니를 뽑으며 성탄을 축하했다.

15년 전, 새 애인을 만난 나는 열정이 극에 달했다. 이전 애인들과도 물론 크리스마스를 색다르게 보냈지만, 애인이 바뀌었으니 원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 한참 전 예약을 해뒀다.

그 식당은 특이한 돈가스를 특이한 방식으로 판매했다. 하루 세 타임, 두 테이블씩, 당시로썬 흔치 않게 반드시 인터넷 게시판에서만 예약을 받았다. 코스도 두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가격도 2만5000원이나 했으니 꽤 비쌌다.

연말이라 일이 몰려 피곤했는지 그 즈음 나는 감기에 된통 걸리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얼굴이 벌개질 만큼 열이 오르고 기침도 심했다. 그래도 돈가스를, 아니 크리스마스를 포기할 순 없었다. 식당은 서울 신촌 어디쯤에 있었다. 전철역에서 만난 애인은 나를 보고는 황당해했다. 몸도 안 좋은데 예약을 취소하자는 거다.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곳에 가겠다고 우겼다.

신촌역에 내려 인쇄해둔 지도를 펼쳐 더듬더듬 길을 찾았다. ‘악마의 계단’으로 불리던 53개의 계단 끝 후미진 곳에 아주 작은 식당이 있었다. 테이블은 딱 두 개. 옆 테이블에도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앉았다. 깻잎돈가스, 고추돈가스, 채소페스토가 들어간 돈가스… 생소한 돈가스가 줄줄이 나왔다. 가장 신기했던 건 아이스크림 튀김이었다. 사장은 우리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면 얼마를 할인해준다고 했다. 옆 테이블 남녀는 시간이 없어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침 설거지통에는 점심에 먹고 간 손님의 설거지거리도 쌓여 있었다. 사장은 저 설거지들을 싹 다 하면 1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기침을 하는 와중에 나는 고무장갑을 꼈고 애인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이후 한동안 크리스마스마다 킹크랩이나 랍스터를 사다 쪄먹었다. 처음 몇 년은 좋았다. 그런데 점점 뒤처리가 귀찮아졌다. 짧은 식사 후엔 큰 찜통과 넓은 접시들을 닦아야했고 지저분하게 널린 껍질들도 버려야했다. 재작년인가, 하도 귀찮아 크리스마스에 치킨을 시켜 먹었다. 별스럽게 보내지 않아도 어차피 하루가 가는 건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애인이었다가 남편이 된, 그와 함께 보낸 열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떡볶이 한 냄비를 만들어 남편과 나눠먹는데 유달리 남편의 머리카락이 허옇다. 이렇게 늙어가는건가. 서글퍼졌다. ‘리추얼(ritual)’이란 말이 떠올랐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상적이면서도 반복적인 행위다. 리추얼이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라 말하는 문화심리학자도 있다. 희한한 돈가스와 킹크랩까진 아니더라도, 일 년 중 어느 하루만큼은 작은 의식을 이어가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다. 다행히 내겐 올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가 남았다. 조금 낯간지럽긴 해도, 연하장을 지인들에게 보내볼까. 요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간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나만의 연말 리추얼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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