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소방본부 긴급기동대 최인귀 소방장 인터뷰
"인명 구조 운명"...특전사 제대하고 소방구조 투신
긴장감 유지, 정해진 시간표 준수...출동 기다려
“동료들에 무한 신뢰...가족에게 항상 고맙다”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지난 10월 31일 밤 11시 반경 독도 앞바다에 소방헬기가 추락했다.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소방헬기는 어로작업을 하다 손가락이 잘린 응급환자를 독도에서 육지로 후송하던 중이었다.

이번 참사로 김종필(46) 기장, 이종후(39) 부기장, 서정용(45) 정비사, 배혁(31) 구조대원, 박단비(29) 구급대원이 순직하고, 응급환자 윤모(50)씨와 보호자 박모(46)씨가 사망했다.

참사 직후 정부는 한 달여 기간 구조·수색작업 등을 벌였으나, 실종된 김종필 기장과 배혁 구조대원, 그리고 박모씨는 찾지 못했다. 수색작업은 지난 8일 종료됐다.

소방대원 5명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10일 오전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실내체육관에서 소방청장으로 엄수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순직자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으며, 희생자 유족들에게 고개 숙여 위로의 말을 전했다.

순직 소방대원들 영결식 후 세종시 은하수공원에서 화장식을 거행하고, 이들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인천소방본부 소속 119특수구조단 긴급기동대 최인귀(42) 소방장은 동료들이 참사를 당한 소식을 접하고 독도로 달려갔다.

수색작업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보태기 위해 2주 간 독도에 상주하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들의 유품이라도 찾아 유족들에게 전해주고 동료애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독도 수색활동에 동참한 최 소방장을 만나기 위해 인천 서구 검암역 인근 긴급기동대를 찾았다. 저녁시간 인천공항고속도로 주변은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기동대 건물에 들어서자 최 소방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동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이어진 인터뷰 자리에서 무겁게 말을 꺼냈다.

인천소방본부 119특수구조단 긴급기동대 최인귀 소방장

“인명 구조는 운명...사명감·보람 느껴”

“독도 소방헬기 참사를 보고 수색작업에 지원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함께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소방대원으로서 깊은 동료애가 있기 때문에 가고 싶었다. 아직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대원들도 있고 이들의 유품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최 소방장은 수중, 산악 등 특수구조 전문가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독도에 상주하면서 작은 희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다. 유족들에게 유품 하나라도 더 챙겨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수색활동에 전념했다.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더 노력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이 계속 맴돌았다. 보통 현장에 있으면 일에 집중하느라 잡념이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다. 아무쪼록 동료들이 영면하길 기원한다.”

최 소방장은 2005년 소방구조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특전사에서 근무한 직업 군인이었다. 그는 동료의 순직을 경험하면서 소방구조에 입문하게 됐다고 했다.

“특전사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선임이 제대하더니 소방 구조에 투신했다. 그런데 2000년 어느 날 그가 주택 화재 진압을 하던 중 순직했다.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안타까웠다.”

최 소방장은 이후 제대를 자청하고 소방 구조에 몸을 담기로 결심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며 인명을 구하는 것이 마치 숙명처럼 느껴졌단다.

“경기도 가평 출신이다. 가평은 유원지도 많고 물이 많아 여름철 등에 인명사고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동네 선배들과 사고를 많이 지켜봤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물가를 수색하던 경험이 많다. 아마도 하늘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현재 소방 구조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은 그러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7년간의 특전사 근무를 마치고 순직한 선임의 뒤를 따라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소방 구조 소임에 몸을 던졌다. 보람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영종대교 연쇄 추돌사고...가장 가슴 아픈 일

최 소방장은 소방 구조에 입문한 후 10년이 지났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며 말을 꺼냈다.

“당시 선착대로 도착했다. 도로는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갔는데, 어느 차량에서 외국인 한 명이 소리쳤다. 한국말이 아니지만 급박한 상황임을 알고 달려갔다.”

“그 외국인은 사고난 봉고차 운전석으로 안내했는데, 앞뒤로 차량들이 뒤엉켜 있어서 차량에 끼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특수장비를 동원해 운전자를 빼냈다. 그리고 병원에 이송하는 것까지 봤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 사람은 결국 사망했다.”

2015년 2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구간 서울 방면 상부도로가 안개로 뒤덮여있었다. 시야확보가 안된 고속 주행 차량들이 어느 순간 사고로 이어져 순식간에 106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공식집계로 사상자는 사망 3명, 부상 129명에 이른다. 사망자 중에는 최 소방장이 구조한 외국인 한 명이 병원 치료 중에 숨졌다.

“오늘 같이 안개와 미세먼지 등이 뒤섞여 있는 도로는 위험이 올라간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평소보다 20% 감속 운행을 해야 하고,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당시 구조의 기쁨도 있었지만, 결국 구조자가 사망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는 또 가슴 조리며 기뻐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같은 해 을왕리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너울파도에 9명이 휩쓸려 물에 빠졌는데 이를 구조했던 경험을 말했다.

“구조자 중 20대 남성 한 명이 호흡과 맥박이 미약했다. 심폐소생술을 20여 분간 지속했다. 의식불명이었고, 구급대 이송차량에 옮길 때까지 희망을 걸었다. 이후 병원에 도착해 호흡과 의식이 돌아왔다. 뿌듯한 마음에 가슴이 벅찼다.”

최인귀 소방장은 독도 소방헬기 추락 참사에 동료로서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침착·평정 유지하면 위기 헤쳐나갈 수 있어

최 소방장은 구조활동에 있어 어려운 점이 크게 없다고 했다. 인천은 비교적 장비 보급이 좋고, 소방대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

“15년 근무기간 동안 크게 힘들거나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런데 인천은 공장 등 비교적 공간이 큰 장소에서 화재가 나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주택보다 공장에 불이 나면 긴장감이 느껴진다.”

“어느 날은 공장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장비를 챙겨서 현장에 들어갔다. 창고였다. 안에 들어가니까 갑자기 앞이 안보일 때가 있었다. 뒤를 돌아봐도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겁이 좀 나긴했는데, 심호흡을 하고 무전에 귀를 기울였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현장 수색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어떤 위난 상황에 있어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침착하게 생각을 이어가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며 주변을 둘러보라고 했다.

“각 가정에서 화재가 나도 서두르면 안된다. 특히, 주방 화재의 경우 물을 뿌리지 말고 담요 등으로 불이 확산 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우선은 주변 사람들과 몸을 피신해야 한다. 가정용 소화기를 구비하면 더욱 좋다. 소화기 사용법을 평소 익혀둘 필요가 있다.”

“평소 출동대기하며 체력단련과 장비점검 등 긴장감 유지”

소방대원들은 화재 진압, 구조 활동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할까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긴장감을 항상 유지한다. 언제 어느 곳에 출동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인데, 평소 일상은 정해진 시간표대로 생활한다. 대원들은 사무분장을 해서 행정업무도 하고, 장비점검과 조작 훈련도 실시한다. 그리고 체력 단련에도 매진하고, 상황별 시뮬레이션 등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보통 일선 소방서는 3교대로 근무한다. 최 소방장이 근무하는 긴급기동대는 총 22명이 근무한다. 이들은 순번을 정해 밤낮으로 출동 대기를 하고 있다.

“사고가 접수되면 출동 정보를 확인한다. 어느 곳이고 어떤 사고이고, 규모와 상황을 파악하고 즉시 나가는데, 차량에 기본적인 장비가 탑재돼 있다. 그리고 화재·사고 정보를 파악해 필요 장비를 더 챙기고, 어느 차량에 어떤 대원이 타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다.”

소방대원들의 일상은 정해져있다. 현장 중심으로 모든 일들이 맞춰져 있고, 1초라도 더 빠르게 나갈 수 있게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 나가면 선착대 브리핑을 듣고 지휘자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동료들이 든든하다. 구급대원이 있고, 화재진압과 구조대원들이 현장에서 마치 짜여 진 각본처럼 움직일 때 좀 더 빨리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소방대원들의 일상은 긴장감과 함께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동료들에게 무한 신뢰...가족에게 항상 고맙다”

“현장에서 동료들이 겪는 어려움을 많이 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위난에서 벗어날 때도 있고, 내가 부족하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소방대원들은 끈끈한 동료애와 의리가 있다. 소방구조 일을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최 소방장은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을 때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다. 다만 혼자 할 수 없을 일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낼 즈음 최 소방장은 가족들에게 특히 고맙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둘이 있다. 큰 애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고, 둘째는 4학년 딸이다.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다. 그리고 아이들 키울 때 내가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애들 잘 키워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큰 놈은 무뚝뚝하지만 믿음이 있고, 작은 애는 애교가 많아 집에 가면 웃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고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가족과 동료 얘기에 최 소방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방서를 나오는데 짙은 안개가 거치고 눈 앞이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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