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라이어(The Good Liar)│빌 콘돈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2009년 영국, 노년의 한 여자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프로필을 작성하고 있다. 화면이 바뀌고 여자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남자 역시 같은 사이트에서 프로필을 작성 중이다.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던 여자는 ‘음주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 답한다. 담배를 입에 문 남자는 ‘흡연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역시 ‘아니오’라고 답한다. 모니터 뒤의 진실을 감추는 것이 온라인 데이트의 법칙이라는 듯.

채팅으로 몇 마디 인사를 나눈 여자와 남자는 직접 만나 저녁식사를 한다. 온라인 데이트에 별 기대가 없었다던 두 사람은 서로 마음에 들었는지 프로필에 거짓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데이트를 이어간다. 첫 데이트에서 솔직하게 밝힌 여자의 이름은 베티(헬렌 미렌). 1년 전 남편과 사별한 부유한 노인이다. 남자의 이름은 로이(이안 멕켈런). 하나뿐인 아들과 인연을 끊고 홀로 살고있다.

베티와 로이는 금세 가까워지고, 베티는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이가 계단을 겹겹이 올라야하는 낡은 건물 꼭대기에 사는 게 안타까워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어느덧 베티와 로이는 황혼의 동반자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로이는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베티와 첫 만남 때도 기차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해놓고 택시를 잡아타고 스트립 클럽으로 가서 사기성 다분한 투자를 모의한다. 베티를 만날 때면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무릎 아픈 노인 행세를 하다가도 베티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처럼 멀쩡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뛰어간다.

베티의 집에 살면서도 뜬금없이 자산관리사라며 친구 빈센트(짐 카터)를 초대해 은근슬쩍 베티의 자산을 확인하고, 세금을 줄이고 큰 이익을 보게 해주겠다며 베티와 로이의 재산을 공동계좌로 합하자고 제안한다. 베티의 손자 스티븐(러셀 토비)은 의심스러운 것투성이인 로이를 경계하지만, 베티는 오히려 손자를 나무라며 로이를 감싼다.

어느 날 베티와 로이는 베티의 숙원인 베를린 여행을 함께 떠나고, 그곳에서 감춰왔던 로이의 비밀이 밝혀진다.

빌 콘돈 감독의 ‘굿 라이어’는 거짓말이 일상인 사기꾼이자 자신의 사기행각에 방해가 된다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 로이가 순진하고 부유한 베티의 호의를 이용해 전 재산을 가로채려는 사기극이자, 로이의 정체를 알게 된 베티가 처절한 응징에 나서는 복수극이다.

로이의 사기행각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로이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베티를 안타까워하며 언제쯤 로이의 정체가 들통 나려나 마음을 졸이며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제목 ‘굿 라이어’에 걸맞게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악당 로이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이해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로이와 베티의 베를린 여행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로이의 과거가 드러나고 베티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감정은 다시 리셋. 새로운 긴장감에 머리가 멍해지다 못해 맥이 탁 풀려버린다.

두 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칠순의 헬렌 미렌과 팔순의 이안 멕켈런, 두 노인이 거의 모든 장면을 이끌어 가는데도 스릴러의 긴장을 조금도 놓을 수 없었다. 두 배우의 심리전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후반부 헬렌 미렌의 차갑고도 우아한 복수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의 프로필 작성부터 시작된 로이와 베티의 거짓말은 영화 내내 지속된다. 다만 누군가의 거짓말은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거짓말은 과거의 상처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쓰였다. 일말의 주저함도, 자비도 없는 베티의 응징은, 그래서 통쾌하다. ‘굿 라이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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