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교동~연백 평화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며, 강화 교동도
[탐방기] 교동~연백 평화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며, 강화 교동도
  • 이종선 기자
  • 승인 2019.12.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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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인천 평화ㆍ생태 섬을 거닐다 ③교동도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교동도는 서해에서 한강하구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섬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경과 가까운 이유로 국제교역 기착지 역할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돼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기도 한 곳이다.

또한 수도와 가까워 감시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왕족의 유배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교동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북녘을 바로 앞에 두고도 발이 묶인 듯 바라볼 수밖에 없어 더욱더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인천시와 인천대학교 통일통합연구원이 주최한 ‘청년, 인천 평화와 생태 섬을 거닐다’ 네 번째 일정으로 볼음도 탐사를 다녀왔다.

교동도는 지난 2014년 다리가 놓여 왕래가 쉬워졌다. 이번 탐사 일정 중 처음으로 배를 타지 않고 섬을 방문했다. 하지만 섬 전체가 민간인통제구역이라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 들어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외부인은 저녁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교동대교를 건너 버스에 내려 처음 땅을 밟으니 커다란 제비가 많은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관광명소 ‘교동제비집’이다. 이곳은 강화군이 중앙·지방정부, 민간과 협력해 추진하는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 프로젝트’ 거점 시설로 주민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교동제비집 입구에 있는 대형 제비 모형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가상체험으로 진행하는 교동~연백 평화의 다리 건설.

이곳에서는 소소하지만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여행객들이 주제를 직접 골라 교동신문을 만들거나 교동~연백을 잇는 평화다리 놓기에 동참할 수 있다. 가상체험으로 평화다리에 벽돌을 하나 얹었을 뿐이지만 한반도 평화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제비집 옆에는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대룡시장이 있다. 대룡시장은 60~70년대처럼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인심도 옛날 그대로다. 상인들은 꽈배기·호떡·전통과자·떡 등 시식 메뉴를 인심 좋게 큼직하게 내놓는다. 주전부리로 허기를 조금 채우면서대룡시장을 둘러본다.

대룡시장 거리.

시장에는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보다 더 오래전 복고 감성이 느껴진다. 옛날 모습이 담긴 장난감·포스터·벽화 등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발소·약국·철물점·옷가게 등도 눈길을 끈다. 교동도 여행도장을 찍으면 쌍화차를 한잔 얻어먹을 수 있다. 쌍화차라고 해서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세련된 맛이다.

화개산 중턱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중턱 연산군 유배지.

발길을 돌려 화개산(259m)으로 향하는 강화 나들길에 올랐다. 조금 등반하다 보니 화개산 중턱에 연산군 유배지가 보인다. 연산군은 폐위 당시 한양 돈의문을 나와 연희궁에 유숙하고 김포·통진·강화도를 거쳐 교동도에 도착 후, 화개산이 있는 고구리 안치소에 머물렀다. 고려 시대에는 희종·강종·충정왕·우왕·창왕 총 5명이 유배당한 곳이기도 하다.

길을 다시 오르다 보니 규칙적으로 놓인 돌들이 보이는데 바로 화개산성의 흔적이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게 느껴진다. 해양 전략적 이점으로 백제의 관미성이 이곳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화개산성터.
화개산 정상에서 보이는 황해도 연백.

둘레길 왼편으로 북녘땅이 보인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뒤, 탁 트인 광경으로 보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상에 오르니 그동안 다닌 주문도·아차도·볼음도 등 강화군의 대부분 섬과 황해도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높지 않은 산인데도 광활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니 횡재한 기분이다.

편히 쉬며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었지만, 태풍에 파손돼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안쓰럽다. 아쉽지만 남북이 함께 건설한 교동~연백 평화다리를 화개산 정상에서 흐뭇하게 바라볼 날을 기원하며 하산했다.

난정저수지 둑길. 왼편으로 북한 방면은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다.

마지막으로 난정저수지를 들렀다. 이곳에도 분단의 상징으로 철책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름다운 호수처럼 보이는 난정저수지가 스산한 철책과 대비된다. 철책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철새들을 부러워하며 난정저수지 둑길을 걷다 보니 해가 저물어갔다. 둑길을 걷듯 평화의 다리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