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 산곡동 30년 빵집 ‘쉐라메르’ 홍준표 사장
2대에 걸쳐 오랜 시간 맛으로 주민들에게 신뢰 쌓아
재방문률 60~70%, ‘빵지 순례’ 필수 방문지
“기술력을 바탕으로 데이터 경영 이어갈 것”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인천 부평 산곡동 빵집 ‘쉐라메르’는 이른바 ‘빵지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이 찾는 필수 순례지다. ‘빵지 순례’란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성지를 다니는 ‘성지 순례’에서 빌려온 말인데,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있다고 소문이 난 국내 각지의 빵집을 돌아다니는 현상을 일컫는다.

유명세는 산곡동 사람들의 입맛을 평정하면서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만 영업했기 때문에 더욱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빵으로 입맛을 평정했으며, 소문이 인천지역으로 퍼졌고, 수도권과 지방 각지에서도 인천을 오게 되면 찾는 곳 중 하나가 됐다.

빵을 평소 잘 먹지 않는 사람들도 쉐라메르의 대표 제품인 ‘산딸기 바게뜨’를 먹으면 잃었던 입맛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났다.

쉐라메르가 빵맛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한 곳에서 오래 영업을 하면서 신뢰가 쌓였다. 주변에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겼지만, 문을 닫을 정도로 입지가 굳건하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빵맛을 보기 위해 쉐라메르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문난 빵집의 맛을 보기 위해 쉐라메르를 찾아갔다. 산곡동우체국 건너편에 위치한 매장은 아파트 밀집 지역 사거리 길목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매장 겉모습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건축물과 같은 모습이다. 오래된 가게라는 느낌을 준다. 매장에 들어서자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빵 냄새가 가득한 매장 한편에서 홍준표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쉐라메르 과자점 홍준표 사장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가득

쉐라메르는 제과·제빵 명인인 홍순기 씨가 1991년 산곡동 주택가에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홍준표 사장이 대를 이어 경영하고 있다. 명인의 솜씨와 경영철학을 이어받은 홍준표 사장은 부친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몇 년 전에 가게를 그만 접어야겠다고 하셨다. 오랜 시간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힘에 부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보겠노라고 말씀드렸더니, 별 말씀 없으시다가 믿음을 주셨다.”

홍 사장은 올해 36세가 된 젊은 청년이다. 학교를 다닐 때도 제과·제빵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부친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처음에 아버지는 말리지도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빵을 만들고 파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식에게까지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홍 사장이 사업을 이어받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매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인 2015년부터다. 기술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더욱이 아버지가 일궈놓은 가게의 명성과 빵맛, 운영방식 등을 이어가기에 어려움도 있었으리라.

“나는 여행사에서 수년간 일을 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직업을 바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내세우는 원칙과 자부심을 이어가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배우고 있고 때에 따라서 아버지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에 쉐라메르 매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가지각색의 케이크가 진열돼 있고 갓 구운 빵들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위장을 자극했다.

홍준표 사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꾸준히 기술·제품 개발을 하고 있으며, 모니터링 ·매출 수요 분석 등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해 경영하고 있다.

“아버지 존경, 원칙 지키는 경영철학 이어갈 것”

홍 사장은 부친 홍순기 명인을 존경한다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아버지는 충남 논산 출신이다. 서울로 올라와서 빵 기술을 배우셨다. 처음 다닌 직장은 나폴레옹이라는 굉장히 오래되고 유명한 빵집이었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안산에 처음 매장을 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이 나서 매장이 잿더미로 변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나지 않지만, 좌절을 크게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자식 얼굴을 보면서 다시 재기하기 위해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부친 홍순기 명인은 당시 자살까지도 생각해다고 한다. 아는 사람들에게 사기도 당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으리라.

이후 홍순기 명인은 4년간 가게 자리를 보러다녔고, 결국 인천으로 오게됐다.

“아버지는 그 뒤로 4년간에 걸쳐 틈틈히 가게 자리를 보러다니셨다. 결국 결심한 곳이 지금 있는 산곡동이다. 나는 아버지 덕에 인천사람이 됐다. 학교도 모두 나왔고, 여기가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다.”

쉐라메르는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주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주택가 유동인구도 제법 많은 편이다. 홍순기 명인의 선견지명이 느껴진다.

“매장은 처음부터 잘 됐다. 독일 유학도 다녀온 아버지는 기술력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부심이 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현재 우리나라 빵 기술은 유럽 등 서양을 넘어선다. 손님들이 찾아주는 것은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동안 쉐라메르를 거쳐간 명인들도 많다. 홍 대표의 부친은 직원과 일을 해도 고용인으로서보다는 그들을 파트너로 생각했다고 한다.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정보도 공유하고 친목 교류도 계속 이어간다고 한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인정하는 기술자는 3~4명 정도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신 분들이 다른 곳에서 사업을 일구어나갈 때에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존경심이 드는 대목이다.”

쉐라메르는 30년 간 주민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있는 인천 대표 빵집이다.

한 번 찾으면 계속 발길 이어지는 곳

홍 사장은 제과·제빵 명인은 아니다. 아버지가 관련 분야에 뛰어난 기술자였다면, 2대에 이어서는 이제 경영을 더욱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장에는 뛰어난 기술자 분들이 계신다. 매일 나오는 제품은 아버지가 했던 방식대로 원칙을 지키며 만들고 있다. 나로서는 기술적으로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고, 오히려 지금은 경영에 집중해 매장을 유지하고 서비스와 마케팅에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쉐라메르는 지역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사회공헌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복지관과 양로원 등을 찾아 ‘사랑의 빵’을 나누고 있으며, 인적 교류의 폭도 넓히고 있다.

“빵집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카페들은 많이 생기면서도 문을 닫는 곳들이 많다. 그런데 빵집은 설비가 비교적 비싸기 때문에 소규모 자본으로는 할 수 없다. 그나마 프랜차이즈로 개업하는 곳도 있는데, 그 집만의 색은 없다.”

홍 사장은 쉐라메르의 장점으로 오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빵맛과 정성을 들었다. 재료도 엄선해서 사용한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기 때문에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모 프랜차이즈 다니던 손님이 어느날 그랬다. ‘이 집만큼 한 곳이 없다’고 말한 것을 들었는데, 더욱 정성스럽게 빵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손님들은 한 번 오면 계속 찾는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홍 사장은 단골이 많다고 자랑했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또, 자주 오는 분들은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경영자로서 뛰어난 기질을 가졌다.

홍준표 사장은 인천 브랜드를 강조하면서,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네트워크 협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만족도는 65점”

홍 사장은 부친에게서 매장을 이어받고 가족들과도 함께 일한다. 아내와 딸이 있다. 아내는 홍 사장이 빵집을 한다고 했을 때 믿음을 줬다고 한다.

“가족과 일하는 게 좋다. 아내도 좋아한다. 집에서도 보고 가게에서도 보면 지겹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통된 관심사로 대화도 하고 좀 더 품질을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때문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쉐라메르의 매력은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손님들에게 신뢰를 쌓았다는 점이다. 부친이 30년을 장사했으니 이제 홍 사장이 뒤를 이어 30년 이상을 무난하게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매장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들인데, 재방문율이 60~70% 정도 된다. 보통 다른 곳은 재방문률이 20~30%에 그친다. 우리 집에 2~3배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단골 손님들에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굉장한 경쟁력이다. 재방문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은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지리적 조건과 환경을 갖추고 있어도, 음식은 맛이 없으면 사람들은 가지 않는다. 더욱이 빵은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상 깊다.

“주말 매출도 높게 나온다. 이는 외부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빵지 순례’로 우리 집을 찾는 것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소문이 많이 났다.”

홍 대표는 그래도 아직 만족하기에 이르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유명하거나 괜찮다고 소문이 난 가게를 찾아가 맛과 서비스 등을 평가한다.

“매장 만족도는 종합 100점 만점에 65점이다. 현재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전문가들을 모시고 평가를 받는다. 내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 보다 큰 만족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홍 대표는 ‘인천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서 시민들의 평가가 좋고 오래 유지하며 장사한 소상공인들이 보다 커가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 지자체의 도움도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기술·제품 개발도 꾸준히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빵은 온도·습도 등 날씨 상황, 사람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일관성 있고 꾸준하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다가가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홍 사장은 지역 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인천유나이티드와 유소년팀 등과 함께 협력 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천은 내 고향이다. 도시 특색은 국내 지역을 함축해 놓은 듯하다. 스프츠 행사와도 협력을 하고 싶다. 그리고 빵과 함께 생활의 질을 높이고 모두가 행복한 맛을 선보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매장 나서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씩 들어왔다. 사람들은 맛있는 빵을 고르고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