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을 순식간에 국물까지 다 마셨다. 몸이 노곤하다. 30분 전, 근처 오래된 가게 사장님 인터뷰를 마친 터였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가게 안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추위에 뻣뻣하게 굳은 뼈에서 우둑우둑하는 소릴 들으며 쌀국수집으로 들어왔다. 이 날씨에 가을 청바지를 입은 건 실수였지만 근처 맛집을 미리 검색해둔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역시 추위엔 뜨거운 국물이 최고다. 추위도 싹 가셨겠다, 배도 부르겠다, 인터뷰도 잘 마쳤겠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가게를 나와 지하철을 타러 몇 걸음 걸었을 때, 낡은 가게들 사이에서 세련된 조명 빛을 내는 작은 상점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마카롱 가게였다.

마카롱이 인기를 끈 지 꽤 오래됐지만, 내 돈을 주고 사 먹은 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일이다. 딱 한 입 크기밖에 안 되는 게 값은 웬만한 빵보다 비싸고 달기는 무척 달았다. 그런데 추운 날엔 유난히 단 것이 당기기 마련. 게다가 검색해보니 이곳은 저녁이면 물건이 동이 나 일찍 문을 닫곤 하는 마카롱 맛집이었다. 추위에 고생한 걸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망설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장 안 마카롱은 예전에 내가 먹었던 것과 많이 달라 보였다. ‘꼬끄’라 부르는 딱딱한 겉장 두 개 사이에 생딸기와 ‘샤인머스캣’이라는 청포도가 크림과 함께 통으로 들어가 있었다. 색깔도 화려했다. 고급지고 예쁘고 맛도 좋을 것 같은 마카롱을 맘 같아선 종류대로 다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름 5cm 정도의 마카롱 한 개 값은 2500원에서 2700원 사이. 네 개만 골라도 1만 원이 넘는다. 차마 간식에 1만 원을 쓰긴 아까워 딱 세 개만 골랐다.

비싼 마카롱이 행여 깨질까, 가방에 조심스레 넣고 지하도상가로 내려왔다. 곰곰이 생각했다. 대체 마카롱이 무엇이기에 이다지도 비싼 걸까. 마카롱 재료는 아몬드 가루와 달걀 흰자, 설탕과 크림, 속 재료 등이다. 크기 자체가 작으니 재료값이 많이 들어갈 리 없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한가? ‘꼬끄’를 구울 때 실패할 확률이 높은 모양이다. 그 비용이 마카롱에 들어가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그런데 마카롱 가게 정도 차리려면 웬만큼 기술엔 자신이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자주 실패한다면 팔기에 충분한 마카롱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고 손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혹시 미래에 실패할 비용을 미리 받는 걸까? 능력 부족에 대한 비용을 제품 값에 포함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따져 봐도 마카롱 가격엔 ‘핑크택스’가 붙어있는 듯하다. 핑크택스는 같은 상품이라도 ‘여성용’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지는 것을 말한다. 2015년 미국 뉴욕시 소비자보호원에서 제품 800개를 조사한 결과,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13%가량 더 비쌌다고 한다.(<여성신문> 2019.7.25.)

우리나라도 그렇다. 대표적인 핑크택스는 미용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 커트’는 ‘남성 커트’에 비해 2000~3000원 정도 더 내야한다. “디자인 비용이다, 여성 머리엔 기술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는 일면 이해가 간다. 문제는 똑같은 투블럭 커트임에도 여성에겐 돈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샴푸와 기초화장품, 같은 디자인의 의류도 여성용이 더 비싸고, 여성이 많이 찾는 카페의 음료 값, 심지어 스파게티 가격에도 핑크택스가 포함됐을 거란 말이 나온다. 남성들이 주로 찾는 피시방은 10시간 동안 게임을 해도 1만 원이면 해결되는 것에 비하면 카페의 음료 값은 과하단 지적이다.

핑크택스를 떠올리며 지하도상가를 걷다 보니, 몇몇 가게를 빼곤 죄다 여성용 상품이 진열돼 있음을 금방 알겠다. 가게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어서 들어와서 화장품으로 얼굴을 꾸미고, 유행 따라 옷을 입으라고. 귀고리를 하고, 굽 높은 신발을 신으라고. 너의 행복과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저들이 보는 나는, 여성은, 과연 무엇일까. ‘당당한’ 소비의 주체인가. 가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급여를 더 많이 받던가? 정규직이 많던가? 승진이 잘 되던가? 가방 속에서 부스럭대는 마카롱 세 개가 자꾸 거슬린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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