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의 인천 섬 기행
백아도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굴업도가 부드러운 능선으로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섬이라면, 백아도는 남봉의 기세가 날카로워 호탕한 기상을 마음껏 뿜어내는 섬이다. 굴업도가 백패킹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백아도는 점점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다섯 집 정도에서 민박을 운영했는데, 지금은 세 집밖에 없다. 예약하지 않고 갔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백아도 관광객은 섬의 아름다움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한적한 여유와 원시의 냄새, 적당한 운동 효과, 기기묘묘한 해안절경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백아도를 추천한다.

트레킹을 즐기거나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 산나물을 채취하려는 사람이 주요 관광객이다. 섬 주민들에게 소득이 될 수 있는 더덕이나 산나물을 싹쓸이하는 관광객 때문에 주민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계속 펼쳐지는 남봉암릉길.

‘보건소 마을’ 숙소로

백아도의 옛 지명은 ‘대동지지’ 덕적도진 항목에 배알도(拜謁島)라고 기록돼있다. 섬 모양이 허리를 굽히고 절하는 것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라 전해진다. 덕적도를 비롯한 섬 사람들은 ‘빼아리’ 또는 ‘삐알’이라고도 부른다. 1910년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는 백아리(白牙里)로 기록돼있는데, 섬 모양이 상어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백아도(白牙島)로 고쳐 배알도를 대신했다.

굴업도를 지나 백아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섬 끝에 위치한 장군바위가 반긴다. 부인이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는데, 그렇다면 망부석일 것이다. 그리 큰 형상이 아니어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기차바위다. 선착장 옆 기차는 바다 위를 달리려 힘을 비축하고 있다. 의문을 품지 말자. 은하철도999는 하늘을 날아다녔는데 바다쯤이야. 섬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재미 중 하나는 파도와 세월에 깎여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보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형상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해안 방파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보건소 마을에 도착하는데, 양지바른 언덕 위에 빨강과 파랑 등 원색으로 지붕을 칠한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을 예전에는 ‘어르금 마을’이라 했는데, 백아도에서 가장 끄트머리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작은말’이라고도 부른다. 개량주택들로 바뀌었지만, 돌담은 옛 흔적이 남아있어 정취를 돋운다.

숙소인 해변민박의 음식은 정갈하다. 겉절이ㆍ무생채ㆍ깍두기와 생굴이 기본으로 깔리고 때마다 생선구이ㆍ전ㆍ찌게 등이 조금씩 바뀐다. 이렇게 깔끔하게 반찬이 나오는 섬 민박집은 처음이다. 다들 섬의 토속적 맛이 구수한 느낌이었다면, 이 집은 입맛을 다시는 상큼함이 주인아주머니의 성품을 닮은 것 같다.

섬 끝자락에 있는 장군바위. / 기차바위.

백아도 옛집의 흔적

백아도가 한창 성세를 이룰 때는 90여 가구에 달했는데, 지금은 20여 가구만 남았다.

자식들은 육지에 나갔고 거의 노인만 기거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없다. 쇠락해가는 마을, 집들도 개량주택으로 바뀌어 과거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돌담은 그대로 남아 있어 과거로 거슬러 가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인간은 시공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상상으로 시공을 초월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개량주택 지붕을 지우고 띳집을 생각한다. 터덜터덜 과거로 걸어 들어간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렬한 원색의 지붕이다. 기와를 저렇게 원색으로 칠할 수 있을까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플라스틱 기와다. 아마도 비용절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돌담이다. 큰 돌, 작은 돌, 자잘한 돌들이 어울려 견고한 담을 이룬다. 그 돌틈 사이로 담쟁이 넝쿨이 우거져 균형을 맞추며 세월을 덧칠한다.

집터를 닦으며, 밭을 갈면서 나온 돌들을 이용해 담을 만든 수고로움 덕분에 지금 눈이 호사를 누린다. 집터를 닦으며 들어낼 수 없었던 커다란 바위 위에 돌담을 그대로 올린 것은 더욱 정겹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이 허술한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견고하다. 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고, 바람이 지나가며 돌들은 더욱 견고하게 맞물린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서서히 체득한 결과물이다.

마을을 돌다가 한 곳에 눈이 머문다. 지붕선이 교묘하게 산 능선과 맞아떨어진다. 목수의 의도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절묘하다. 잠시 넋을 놓고 본다. 대목들이 지은 웅장한 사찰 건축에서 가끔가다 만나는 장면을 이곳에서도 만나다.

백아도 지도. / 정갈하고 상큼한 해변민박 음식. / 백아분교로 가는 해변길. (사진 위부터 반시계 방향)

백아도 남봉으로 가는 길

이 섬이 좋은 이유는 바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터덜터덜 느리게 걸어도 된다. 보건소 마을에서 발전소마을로 가는 길은 섬의 가장자리를 깎아 해안도로를 냈다. 혹자는 섬의 풍광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섬 주민들에게는 생계와 생활의 편리함이 직결되는 문제다.

보건소 마을에서 해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니 모래사장 뒤로 백아분교 터가 나온다. 1933년에 개교해 백아도가 성세를 이룰 때는 학생 150여 명이 다녔다는데, 해군부대가 철수하고 학생들이 인천 뭍으로 중ㆍ고등학교 진학을 한 후 섬으로 돌아오지 않아, 1996년에 문을 닫았다. 197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던 산업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섬에 갇혀 육지를 그리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유학은 달콤한 유혹 그 이상이었으리라. 이제 섬들도 사라져가는 향수 속 존재가 될 것 같다. 마치 해무 속에 숨어있다가 희끗희끗 드러나 자태를 뽐내는 아련함이 아닐는지.

계속 터덜터덜 남봉을 향해 간다. 굴곡진 길 한쪽에 차량 안전거울이 꺾여있다.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간 것 같다. 태풍이 심하게 불면 지붕이 날아간다 하니, 섬사람들의 생존 투쟁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길을 내면서 생긴 절벽에서 해국이 방실 웃는다. 어느새 주인아주머니가 해안 끝에 오셔서 굴을 캐고 있다. 우리 저녁 반찬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저녁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 해안도로가 끝나고 발전소 마을로 가는 길에 해삼 종묘장이 있다. 봄에 사먹는 해삼은 별미다.

해삼 종묘장부터 남봉으로 가는 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하다.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걸어간다. 좌우에 늘어선 나무들과 풀이 뿜어내는 냄새, 이 한적하고 여유로운 길에서 태고의 울림을 맛보는 나는 누구인가. 나무가 됐다가 풀이 됐다가 다시 그들이 뿜어내는 진한 냄새에 취해 두둥실 떠간다.

공룡능선 남봉암릉으로

발전소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왼쪽으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갑자기 바위들이 가로막고 왼쪽으로 흙길도 나온다. 흙길로 가면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 바위들이 난 길로 갔다. 그 절벽을 오르락내리락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어느 정도 올라오니 남봉암릉이 까마득히 펼쳐진다. 좁은 평지가 나타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면 아찔한 해안 절경이 발목을 움켜잡고 가지말라 한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는 동아줄이 드리웠다. 능선 아래로 까마득히 절벽이 떨어져 내리고 하얀 포말이 절벽에 부딪혀 부서진다. 조심조심 절벽의 끝으로 발을 내딛는다.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찌릿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진다.

돌담집. / 지붕선과 능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집.
남봉으로 가는 고즈넉한 길. /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 드리워진 동아줄.

절벽을 올라 고개를 들다 깜짝 놀랐다. 멀리 바위 위에 고양이가 걸터앉아 있다. 저게 왜 사람이 오는데도 꼼짝 않고 있지? 간이 철렁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누군가가 돌을 쌓아놓은 것이다. 근시인 내 눈을 탓해야하나. 암릉에 올라서 왼쪽을 바라보니 해삼 종묘장과 보건소 마을 선착장이 보이고, 바다 쪽으로는 선갑도ㆍ지도ㆍ부도ㆍ울도 등 올망졸망한 섬들이 백아도를 병풍처럼 에두르고 있다. 뒤쪽으론 발전소 마을과 송신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멋진 풍광이다.

해안 절벽 끝에 해송이 누워있다. 오랜 세월 거센 바람을 맞으며 뿌리를 바위에 내리고 버티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이렇게 삶을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뿌리를 깊게 내리자. 몰아치는 폭풍우도 해송처럼 비끼며 허리를 한껏 뒤로 눕히고 툭툭 쳐내자. 김주대 시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산정의 어떤 나무는 바람 부는 쪽으로 모든 가지가 뻗어 있다. 근육과 뼈를 비틀어 제 몸에 바람을 새겨놓은 것이다.”

암릉이 거의 끝나는 곳에 소사나무 군락지가 펼쳐져있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발걸음을 돌린다. 수직 벼랑을 보며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 등 뒤에서 흔들흔들하는 카메라가 신경 쓰이지만 바위들을 붙잡으며 발을 조심스럽게 딛는다.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위태롭다. 다리의 근육에 전달되는 몸의 하중이 버겁지만 아직은 버틸 만하다.

해삼 종묘장. / 폐허가 된 백아분교. / 절벽에 핀 해국. (사진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월 1회 ‘인천 달빛기행’과 때때로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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