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의 인천 섬 기행
굴업도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이제 미추홀구 답사를 마치고 개항문화권으로 넘어가려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그동안 갔다 온 인천 섬 이야기(옹진문화권)를 몇 편 먼저 쓰려합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기행’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다 보니 설명에 설명, 교사 생활 30년 한 것 맞습니다. 인천기행을 안내하는 교육용 자료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쓰는 글입니다.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굴업도. / 마을로 가는 호젓한 옛길. / 굴업도 마을.(사진 위부터 반시계 방향)

굴업도 백패킹과 해양쓰레기

굴업도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천혜의 자연 풍광이 알려진 후 평일에도 민박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백패킹’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개머리 능선에 한없이 펼쳐진 수크령밭과 억새밭이 망가지고 있다. 민박을 운영하는 주민들의 수익은 늘었지만, 자연 파괴가 큰 문제다. 더군다나 어디서 밀려왔는지 알 수 없는 각종 해양쓰레기로 해변은 몸살을 앓고 있다.

‘백패킹’하는 사람들과 주민 소득과는 거의 관계가없다. 그들은 이미 육지에서 먹거리를 준비해오고 있다. 이제는 백패킹 인원을 통제해야한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원상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봄철에 나물을 채취하는 이들도 제재해야한다. 큰 비닐봉지에 꾹꾹 눌러 담아가도 관리할 사람조차 없는 실정이 안타깝다.

굴업도(掘業島) 가는 길

인천에는 섬 168개가 있는데 그중 40개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이중 천혜의 풍광을 오롯이 간직한 굴업도로 들어간다. ‘대동여지도’와 ‘청구도’에 굴업도(掘業島)라는 이름이 나온다. 섬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어, 마치 사람이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 아마도 이런 형상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굴업도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계기는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장 추진과 CJ그룹의 골프장 등 해양리조트 개발 추진이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굴업도의 자연과 풍광이 입소문을 탔다. 지금은 개발계획이 다 취소됐지만 개발광풍에 언제 또 시달리게 될지 알 수 없다. 이 섬에 가보면 안다. 왜 지켜야 하는지.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덕적도로 가는 쾌속정 ‘스마트호’를 타고 진리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래호’로 갈아타고 굴업도에 들어간다. 차도가 있지만 짐들을 트럭으로 보내고 호젓한 옛길로 걸어간다. 고개를 넘으니 양지에 포실하게 들어앉은 마을이 나온다. 거의 모든 집이 민박을 한다. 우리가 묶은 집은 고씨네. 반찬은 소박하다. 어느 섬을 가나 게장이 나온다. 고사리, 나물, 호박, 감자, 생선, 열무 등에 찌게. 어렸을 때 집에서 먹던 상차림 그대로다. 점점 옛날에 먹던 반찬들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미각이 둔해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수크령밭. 둥글둥글한 개머리언덕 능선. 개머리능선 끝 백패킹. 큰말해수욕장과 토끼섬.(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개머리언덕으로

마을에서 뒤로 나가면 큰말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진다. 그 왼쪽으로 ‘소굴업도’라 불리는 토끼섬이 있다. 예전에 토끼를 방목했다 해서 토끼섬으로 부른다. 이 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해식와(海蝕窪, 바닷물 침식작용으로 해안절벽 아래 생겨난 깊고 좁은 침식지형)가 발달돼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데, 길이 120m, 높이 3~4m 규모로 매우 웅장하다. 굴업도에 몇 번 들어왔지만 물때가 맞지 않아 토끼섬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썰물 때를 기다려야한다. 자세히 살펴보며 한 바퀴 도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므로 물이 빠지자마자 바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좋다. 가끔 고립되는 일이 생겨 구조 요청 신고가 들어오기도 한다.

큰말해수욕장 오른쪽 끝으로 가면 갯바위 위에 철책이 둘러있고 ‘C&I레저산업의 사유지로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그러나 철책 문이 열려 있어 굴업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쉽게 길을 오른다. 별로 높지 않은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큰말해수욕장과 토끼섬이 한눈에 들어오고, 언덕 너머로 덕적도와 문갑도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개머리언덕 능선을 걸으면 왜 이 섬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바다 쪽을 바라보면 돌기둥 세 개로 이뤄진 선단여와 그 뒤로 선갑도, 각흘도, 백아도가 그리 멀지 않게 보인다. 선단여는 생긴 모양이 그래서인지 전설이 있다.

백아도에 늙은 부부와 남매가 살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외딴 섬에 외롭게 살아가던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한다. 시간이 흘러 어부가 된 오빠는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이름 모를 섬에 표류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사랑하는데 십 수 년 전에 헤어진 여동생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하늘이 선녀를 보내 둘의 관계를 설명하나, 남매는 이를 부인하고 사랑을 더 깊이 나눴다. 노한 하늘이 오빠와 동생, 마귀할멈에게 벼락을 내려 죽이자, 이곳에 바위 세 개가 절벽처럼 솟아올랐다. 이를 비통하게 지켜본 선녀가 붉은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선단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개머리언덕 능선은 둥글둥글한 것이 포근하다. 능선 가득 수크령밭이다. 햇살과 바람에 찰랑이는 강아지풀 같은 수크령이 발목을 간질인다. 드문드문 억새와 금방망이가 바람을 잡으려는 듯 한들한들 흔든다. 그런다고 바람이 잡히겠는가. 바람은 능선을 넘어 순식간에 사라진다. 예전에는 소를 방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흑염소와 꽃사슴을 쉽게 볼 수 있다.

소사나무로 숲을 이룬 고개를 넘어서니 능선이 완만하게 아래로 향한다. 개머리 능선 끝자락 좌우에 야영하는 텐트 몇 동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야영객들은 자연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들에게는 한가로운 여유만 있다. 캠핑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기다랗게 누워 햇살을 온몸으로 품기도 한다. 이들을 가로질러 능선의 끝에서 해가 기울어 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이 훔쳐간 발가벗은 소사나무 가지들이 햇살의 기운을 쪽쪽 빨아댄다. 전에는 빽빽했는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야영객이 늘어나며 많이 변한 것 같다. 풍광에 넋을 잃고 한참을 앉았다가 몸에 배인 햇살을 털어낸다. 햇살의 편린이 우수수 발밑에 쌓인다. 미련을 떨어버리고 가자.

돌아오는 길은 지는 햇빛을 받아 온통 능선이 술에 취한 듯 발갛게 익어간다. 카메라에 이 붉은 기운을 담아 본다. 폰에는 담기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발 한 발 떼어 본다.

목기미해변의 날렵한 호선.

연평산으로 가는 길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뒤 천천히 연평산으로 향한다. 목기미해변은 밀물 때 양쪽에서 물이 차오르며 모래사장이 잠기는 곳이다. 1920년 전후에 굴업도에 민어 파시가 서면 이곳 모래톱과 건너편 덕물산 밑자락에 술집과 요릿집들이 꽉 찼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거주하는 주민은 대략 20호를 넘지 않았다. 지금도 덕물산 밑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흉물로 방치돼있다. 모래톱 위에 휑하니 남아 있는 전신주는 햇살과 비바람에 자기 살을 깎으며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오가는 여행객들은 그 쓸쓸함을 모르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쳐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관심 있는 것에만 눈길을 고정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 나도 내 살을 있는 대로 깎아보련다.

모래사장 사슴 발자국이 연평산으로 이끈다. 정겨운 놈, 미리 반겨 길을 내다니. 낮은 둔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다 넋을 놓고 주저앉아 버렸다. 목기미해변의 날렵한 호선,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허리를 가졌던가?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너를 품는다.

코끼리바위.

조금 더 길을 가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해변에 코끼리 바위가 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앞에서 봐도 영락없는 코끼리 형상이다. 바람과 물결이 뚝딱 다듬어 지상에 펼쳐놓은 장난감, 거대하게 빚었기에 들고 갈 수도 없고 어쩔거나? 배 시간을 맞춰야하기에 가슴 한 편에 우선 넣어둔다. 연평산으로 올라야하기에 사구를 밟고 올라가는데 한 발을 디디면 반걸음이 미끄러진다. 재미있고도 힘들지만 천천히 걷다간 어느 세월에 다 올라갈까. 걸음을 재촉해 후다닥 올라본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숲은 짙어지고, 뒤로 돌산이 우뚝 솟아 있다. 길이 끊길 것 같은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지만 가보는 데까지 가봐야지. 가뭄이 계속돼 흙길이 미끄럽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암반. 절벽 사이로 길이 있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다보니 동아줄이 나온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생각난다. 하늘에서 내려준 생명의 줄인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가? 당연히 새 동아줄이겠지. 줄을 잡고 오르면 바로 정상일 것 같다. 정상에 올라서니 한 눈에 굴업도가 다 들어온다. 저 멀리 어제 올랐던 개머리 능선의 끝도 보이고, 감동이 다시 물결을 친다.

시간이 멈춰버린 섬. 곳곳이 나를 붙잡는다.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매달린다. 이곳에 마음 한 쪽을 베어 꼭꼭 묻었다. 바람이 불면 서서히 향기를 내며 조금씩 조금씩 섬을 떠다닐 것이다. 감미로운 바람결 속에 숨어 부드러운 능선을 있는 듯 없는 듯 간질이며 떠돌 것이다.

천상의, 지상의 애인 굴업도여!

[정보]

•섬으로 가는 배편은 한 달 전에 예약을 받는다. 주말에는 예약이 쉽지 않으니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들어가는 ‘나래호’를 먼저 예약하고, 덕적도로 가는 배편을 나중에 예약해야한다.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들어가는 ‘나래호’는 홀수일과 짝수일의 운항순서가 정반대다. 홀수일은 덕적도→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지도→문갑도→덕적도 순으로 운항한다. 짝수일은 그 반대다. 그래서 홀수일에는 1시간 10분 정도 걸리지만 짝수일엔 2시간 40분 정도 걸리니, 홀수일에 들어가 짝수일에 나오는 것이 시간상 여유가 많다.

굴업도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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