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천영기의 인천달빛기행
10. 우각로 문화둘레길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각로 문화마을’

‘쇠뿔고개(우각로)’는 배다리에서 전도관(옛 알렌 별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마치 소의 뿔처럼 휘어졌다는데서 붙은 이름이다. 구한말에 이 일대는 송림리의 일부였다.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1914년 우각리가 됐으며, 1955년에 금곡동과 통합되는 등 변천 과정을 거쳐 숭의 1ㆍ3동으로 다시 통합됐다. 그래서 현재 우각마을 하면, 미추홀구 전도관 일대를 일컫는다.

쇠뿔고개는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 인천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 가는 길목이었다. 인천 개항 후 개항장 중심지이던 중앙동에서 서울로 가려면 경동 싸리재를 거쳐 이곳 쇠뿔고개를 넘어갔다. 1893년에 우각로 정상에 주한 미국공사 겸 서울 주재 총영사를 지낸 알렌의 별장이 세워졌는데, 당시 산 아래 철조망을 둘렀고 민가 하나 없었다.

우각로에 마을이 형성된 때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사진과 자료들로 볼 때 1920년대 개항장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산 밑에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피란민들과 공업단지에서 일하려는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산자락까지 빽빽하게 집을 지어 지금과 같은 마을을 만들었다.

우각마을은 2003년에 주택재개발지구가 됐지만 계속 방치되자 동네 사람들이 떠나며 빈집이 늘어나 치안ㆍ위생ㆍ안전ㆍ쓰레기 문제 등이 심각해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2011년 10월부터 지역예술인들이 중심이 돼 빈집을 수리했고, 2012년 1월 27일 ‘우각로 문화마을’발기인대회를 기점으로 예술인들이 입주해 문화마을을 가꿨다.

2016년 2월 22일에는 총회를 열어 우각로 문화마을을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공용 공간을 마을 사람들에게 환원했다. 그들이 활동한 4년간 우각로 문화마을은 예술인들이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나선 국내 최초 사례로 주목받았다.

나도 ‘우각로 문화마을’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4년간 예술인들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며 참여했기에 해산할 때 아팠던 심정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각로 문화마을 활동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들은 행복창작소와 도예공방, 행복도서관,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며 벽화그리기ㆍ문화콘서트ㆍ전시회ㆍ마을축제ㆍ골목장터 등을 진행했다. 그리고 한글교실ㆍ자기자랑교실ㆍ실버교실ㆍ글쓰기교실ㆍ도예강좌ㆍ마을영화 찍기ㆍ합창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전도관 구역 주택재개발 시공사를 선정하고 건축심의를 통과해 우각로 문화마을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직도 예술인 몇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축제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동요골목.(사진 위) / 도예공방 자기랑.

추억의 동요골목

‘우각로 문화마을’을 한 바퀴 돌려면 도원역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3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뒤 축대에 ‘안전한 우각마을’ 벽화가 있다. 벽화 왼쪽으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미끄럼방지선이 빨갛게 칠해진 아스팔트길로 올라가면 된다. 계속 길을 가다 자동차가 다니는 삼거리 골목에서 한 블록 더 가면 왼쪽으로 시멘트길 오르막이 나온다. 이를 올라 천도교 인천교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매우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이곳이 동요골목이다.

동요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노는 장면들을 그렸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에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감이어서 마음에 든다. 골목골목에 벽화가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동요 ‘어린 음악대’, ‘달달 무슨 달’, ‘동대문을 열어라’, ‘꼬마 눈사람’ 등은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밖에도 벌레의 성장 이야기 등 다양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우각로 문화마을 한 바퀴

동요골목을 나오면 전도관 정문이 나온다. 우각로 문화마을이 운영될 때는 이곳도 개방됐지만, 지금은 닫혀있다. 1905년 알렌 별장의 주인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이 일본과 미국 간 비밀협약인 ‘가쓰라-태프트 조약’에 반대하다 미국 정부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되자, 이완용의 아들 이병구와 서병의가 사용하다 일본인에게 매각했다. 192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 이순희ㆍ이성희 남매가 ‘개미학원’이라고 불린 계명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다 1956년에 한국예루살렘교회 박태선에게 매각해 별장 건물이 헐렸고, 이듬해 전도관이 세워졌다.

우각로 문화마을은 1970~8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 드라마ㆍ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전도관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다보면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 네 개를 만날 수 있다. 전도관 정문 앞에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표지판이 있고, 이곳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쭉 돌다보면 오른쪽 내리막길 모퉁이에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 안에 촬영된 배경을 찾아 같은 장면 사진을 찍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동네 골목길의 재미는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길 중간에 나타나는 여유 공간에 있는 것 같다. 뜻밖의 공간과 마주할 때 감탄이 흘러나온다. 때로는 막힌 길, 막힌 것 같은데 뚫려있는 길이 흥미롭다.

계속 돌다보면 전도관 뒤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넓은 시멘트길이 나온다. 길 가운데 네모나게 벽돌로 두른 자그마한 텃밭들도 볼 수 있다. 공간의 여유를 살린 주민의 지혜가 놀랍다. 언덕 위에 집이 몇 채 있는데, 작년에 이곳을 안내할 때 tvN 드라마 ‘라이브’ 촬영 모습을 봤다. 전도관 축대에 OCN 드라마 ‘보이스(2017)’표지판도 있다. 이 표지판을 지나면 예술인들이 집중적으로 활동했던 ‘도토리협동조합’과 ‘행복도서관’ 건물 등, 다양하게 색칠한 집들과 벽화를 볼 수 있다. 행복도서관을 끼고 좁은 골목길을 내려와 왼쪽으로 조금 더 가면 공터와 현대슈퍼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김희애가 주연한 SBS 드라마 ‘미세스 캅(2015)’ 촬영지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촬영지.(사진 위) / 카메라로 촬영하는 그림.

숭의 목공예마을

경인선 아래 터널 길을 나와 왼쪽으로 100여 미터 걸어가면 숭의 목공예마을이 나타난다. 배다리에 터전을 잡았는데 경인선 철길과 도로 확장으로 도원동으로 옮겼다가 1980~90년대에 이곳 숭의동에 자리 잡았다. 초창기에는 인천 유일 목공예거리로, 지역 명소라고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았으나 목공예의 경쟁력 약화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에 미추홀구는 2012년에 ‘숭의동 프로젝트’라 불리는 목공예마을 조성사업을 계획했으며, 이 사업이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이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2013 도시 활력 증진 사업’으로 선정됐다. 현재 목공예점 10여 개와 목공소 2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목공예점과 목공소는 길가에 위치해있고, 그 뒤 골목길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비영리단체 ‘뿌리깊은나무’와 협동조합 ‘숭의목공예마을’이 목공예로 만든 우편함과 소품들로 골목길을 꾸몄다. 안쪽 골목 철길 옆에선 텃밭을 가꾸고 있다. 골목 끝에는 꽃차 만들기, 자개공예, 가죽공예 등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창작공방’건물이 있다. 그 맞은편 ‘숭의목공예센터’에서는 목공예 기초ㆍ심화과정, 우드버닝, 주부 생활가구 만들기, 클래식 가구 제작 배우기, 서각ㆍ목선반 배우기, 목공예 일일체험, 어린이 목공예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숭의평화시장과 창작공방

숭의평화시장은 1971년에 점포 82개가 들어서며 만들어진 주상복합건물이다. 1980년대까지 번성했으나 인구 유입이 줄고 상인들 고령화와 시설 낙후로 쇠퇴했다. 현재 쌀집과 방앗간, 생선가게, 철물점 등 도로변 점포 10여 개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2014년 이후 미추홀구가 상권을 살리기 위해 건물을 일부 매입하고 창작공간으로 꾸며 예술인이나 문화단체를 입주시켰다. 현재 캘리공방, 염직공방, 필리핀커뮤니티, 인천아트숍,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등 단체 14개가 입주해있는데, 이중 술빚는사람들, 꽃차마실, 맥아티스트는 처음부터 입주해 5년이 됐다.

숭의평화창작공간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플리마켓, 버스킹, 캔들축제, 북콘서트, 전시ㆍ공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입주 단체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온마을학교’와 ‘문화가 있는 날’ 등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각로 골목장터.(사진 위) / 전도관 내 목공방.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달빛기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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