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서울의 한 예술대학 콘서트홀에서 열린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 제목이 조금 길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에이드(Live Aid) “희망”. 굳이 해석을 하면 용산참사 유가족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쯤 되겠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콘서트에는 이승환, 이상은 같은 주류(?) 가수들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알아주는 실력파 라이브 밴드들이 대거 참여했다.

‘용산참사’라는 꽤나 정치적인 사건에 이렇듯 음악인들이 떼거지로 참여한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예술’ 한다는 사람들, 연예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삼가는 나라도 드물지 않은가? 선거 때나 돼야 정치에 뜻(?) 있는 몇몇 연예인들이 눈에 띌 뿐이지, 사회적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연예인은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콘서트가 기획될 수 있었지? 내가 예술을 멀리하는 사이에 예술인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훌쩍 성장해 버린 건가? 긁적긁적.

그러나 세 시간 남짓 헤드뱅잉과 괴성으로 가득한 콘서트의 열기를 흠뻑 즐긴 후 깨달았다. 예술인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갑자기 성장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지하 골방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갑작스레 뛰쳐나온 것도 아니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든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없이 ‘그저 음악만 하고 싶었던’ 예술인들의 비정치적인(!) 열망조차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꽉 막힌 현실이 그들을 그 무대로 불러온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잡아가두고 네티즌들을 소환해 재판정에 세우는 이 나라가, 앵커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자기 소신이 담긴 논평을 했다는 이유로 메인뉴스 앵커자리에서 하차해야하고 평상시 사회참여적인 발언과 행동이 눈에 띄었던 쇼프로그램 진행자가 방송 개편과 더불어 아무 이유 없이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는 이 사회가, 기껏 국민들이 교육감 뽑아놓았더니 교육청 공무원들이 업무보고마저 보이콧해버리는 완고한 관료질서가, 비정치적으로 살고 싶었던 음악인들을 정치적인 무대로 불러 세운 것이다.

어디 음악인뿐이겠는가? 그날 그 콘서트에 온 대다수의 관객들은 나보다 열 살 이상은 어려 뵈는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무대에 선 밴드의 공연에 반응하는 모습을 그들의 부모세대가 지켜보았다면, 아마도 “요즘 젊은 애들은…” 하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방방 뛰며 머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라는 자못 참담한 주제가 걸린 콘서트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토록 생각 없어 뵈는 요즘 젊은이들이 발을 구르고 머리를 흔들며 외친 것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분노였다. 도대체 상식이라고는 쌀 한 톨만큼도 통하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절대 빛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타오르는 한 줄기 촛불 같은 희망이었다.

이 사회는, 현 정부는, 이 나라는, 비정치적으로 예술만 하고 싶었던 음악인들과 생각 없이 놀고만 싶었던 젊은이들마저 투사로 만들고 있었다.

“빛을 이기는 어둠은 없습니다” 이날 콘서트의 마지막 무대에 선 록밴드 ‘블랙홀’의 보컬 주상균이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전 절규하듯 외친 말이다.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가 지난 13일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로 한 말이다.

솔직히 지금은 거칠 것 없는 현 정부의 무한질주에 모든 국민이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거침없는 질주는 국민을 정치적인 존재로 깨어나게 하고 있다. 오로지 예술만 하고 싶은 음악인들마저, 아무 생각 없어 뵈는 ‘요즘 젊은이들’마저. 이것이 작금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이유이다.
▲ 이영주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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