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KBS 열린음악회 신청하신 분들 중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지역에 방문하신 분은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 참여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송도에서 열린음악회가 열린다기에 신청했더니 이런 문자가 왔다. 잠시 뜨끔했다. 강화에 갔던 건 다섯 달 전. 어느 시기에 방문한 사람을 말하는 건지 문자엔 없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아래 돼지열병)이 발생하기 전에 다녀왔으니 나는 괜찮겠지 싶었다. 문자를 받고 나니 돼지열병 사태가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걸 새삼 느꼈다.

예방약이나 치료제가 없고 치사율 100%라는 돼지열병. 약이 없는 건 돼지열병의 원인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체내에서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 몸을 공격한다. 바이러스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 알 수 없을뿐더러 종류도 너무 많으니 약이 무용지물이다. 감기 예방약과 치료제가 없는 이유와 같다. 믿을 건 면역력이다. 몸이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바이러스를 죽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장에서 사육되는 돼지들에게 면역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좁고 더럽고 악취나는 비위생적인 우리에서 몸집만 키워지는 끔찍한 사육방식 때문이다. 돼지들은 항생제를 맞고도 온갖 병에 시달릴 만큼 건강하지 못하다. 특히 면역력이 더 떨어지는 임신한 돼지는 바이러스에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감염된 엄마 돼지에서 새끼 돼지로 돼지열병이 옮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더 참담한 기사를 읽었다. 평생 음식물쓰레기만 먹다가 도축되는 돼지들이 있다는 것이다. 각 가정에서 우리가 버린 바로 그 음식물쓰레기 말이다. 이 방식은 돼지열병이 확산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주간경향> 1341호엔 음식물쓰레기, 즉 잔반을 사료로 재사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짚은 기획기사가 실렸다. 잔반은 90%가 건조비료, 습식비료, 퇴비화, 바이오가스, 가축농가 자가급여 등으로 재활용돼왔다고 한다. 잔반을 사료화하기 위해선 80도에서 30분 이상 가열해야하지만 열처리 여부를 전혀 검증하지 않고 있다. 가축전염병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서정향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사에서 “만약 잔반에 돼지열병으로 오염된 돼지가공품이 들어간다면 반드시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돼지열병으로 오염된 돼지가공품’이란 뭘까. 이는 햄이나 소시지, 만두처럼 돼지고기를 원료로 만든 가공식품을 말한다. 이런 돼지고기 가공품을 포함해 고온에서 충분히 가열하지 않은 돼지고기나 돼지피, 건조ㆍ훈연ㆍ염장 처리된 돼지고기 안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휴면상태로 있다가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면 활성화한다.

문제는 돼지열병이 발병한 나라에서 만든 돼지고기 가공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우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돼지열병은 7월 22일 기준 베트남 4420건, 중국 153건(홍콩 2건 포함), 북한 1건 등 4608건이 발생했다. 153건으로 표시돼있지만, 중국 전역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이 어디에 섞였는지, 추적하고 알아볼 방법이 없다. 소량이라도 오염된 고기가 잔반에 섞여 들어가면 발병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야생멧돼지보다도 돈육가공품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우도 불법 돈육 가공품에 의한 전파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때문에 정부에선 국내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한 즉시 잔반 자가급여를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조치다. 심지어 돼지를 키우기 위해 잔반을 급여하는 것이 아닌, 잔반을 처리하기 위해 돼지를 키우는 농장도 많다. 음식물쓰레기를 받는 농가는 톤당 6만~7만 원을 받기 때문이다. 처리비를 받기 위해 돼지를 키우고, 그 돼지는 저품질로 등급 외 판정을 받고 무한리필 식당이나 학교급식에 ‘국산 돼지고기’로 납품된다.

가정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를 분리 배출해 가축 사료로 먹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것도 아무런 가공처리를 하지 않아 상해서 악취가 나는 채로. 그런 음식을 먹고,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살다가 병에 걸려서 살처분이라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생명이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은 지옥을 만든 악마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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