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

[인천투데이] 추석에 시골에 내려갔다.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된 화제가 조국 장관 임명이었다. 대화 도중 친척 한 분이 ‘학종(학생부종합)은 금수저 전형이야. 학종 없애고 옛날처럼 수능으로 애들을 뽑아야 돼’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나는 우리 애들을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에 보낼 거야. 여기 ○○고가 작년에 농어촌 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대 갔대”라고 말하시는 거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는 “학종 없어지면 농어촌 전형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농어촌 전형 같은 학종 없어지면 강남 대치동 학원에 다니는 애들이나 특목고 애들 정도나 수능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나머지 애들은 힘들어요. 일반고에서 공부 잘한다 해도 수능이 1~2등급에서 왔다 갔다 하고, 농촌 애들은 그보다 더 못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수능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요.”라고 말했다.

약 한 달간 한국사회는 조국 장관 딸의 입시문제로 시끄러웠고, 그것은 이제 입시제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그 수많은 담론 속에 정작 중요한 것은 오고가지 않았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일부 아이만 서울의 일류라고 일컫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은 이야기되지 않았다. 과학고, 국제고, 외고 등 고등학교 서열화의 최정점에 있는 학교들의 학생들이 거기에 갈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 일반고에서도 3년 동안 상장 수십 개를 받고 학교의 관리 속에 학교생활기록부를 만들어온 학생만 거기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30명이 임대주택 1만1000채를 보유하고 있고, 근로소득 상위 0.1%의 1인당 평균 근로소득이 6억5000만 원이다. 상위 0.1%의 이자소득 총액이 2조 5078억 원으로 전체의 17.79%를 차지하고, 배당소득 총액이 7조2896억으로 전체의 51.75%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공정한 입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미래의 부를 획득하기 위해, 그 부를 획득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려는 나라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있기에, 어떤 입시제도도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모든 입시제도가 공정해질 수 없는 것은 극심한 사회ㆍ경제적 불평등과 서울대부터 시작해서 일렬로 쭉 늘어서있는 대학 서열화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하며, 대학 서열화를 없애야한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고교마저 서열화한 과학고, 국제고, 외고, 자사고 등도 없애야한다.

조국 장관 딸의 입시 의혹에 분노한다면, 그전에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분노해야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조국 장관 딸 입시 의혹에만 분노한다면 공정한 입시제도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일반고에서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입시제도를 경험했다. 그 제도들 중 학종이 그나마 교육적이다. 학종에서 애들은 봉사활동도 하고, 책도 읽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자기들끼리 프로젝트 기획도 한다. 정시 수능만으로 대학을 간다면, 애들은 오직 국ㆍ영ㆍ수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종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는 둘 다 공정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공정성을 고민해야한다. 학종이니 정시니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교육적인 학종마저 공정하지 못하게 만든 세상에 분노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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