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저녁 바람에 팔뚝이 서느레진다. 붉게 번지는 노을에 감탄하며 집으로 걸어오는 길, 상가 주차장 한쪽 강아지풀과 바랭이가 수북이 자란 풀밭에서 귀를 잡아끄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높은 소리를 내는 작은 호루라기 같다. 아,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가을이 왔구나.

요즘 10대, 20대도 귀뚜라미 소리를 아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귀뚜라미는 풀밭이라면 어디든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단독주택에서 산 내게 귀뚜라미 우는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할 뿐 아니라 별 가득한 가을 밤하늘로 나를 데려가는 명상음악이었다. 지금도 이 소릴 들으면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귀뚜라미 소리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정서적 곤충’이란 말도 생겼다. 귀뚜라미와 반딧불이, 쇠똥구리, 호랑나비, 장수풍뎅이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귀뚜라미는 또 다른 의미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미래 식량’이다. 우리나라에선 ‘벌레’를 먹는다는 거부감이 크지만 해외에선 이미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곤충을 재료로 한 메뉴를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중국이나 주변 아시아 국가는 물론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린 곤충이나 분말 등을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쿠키나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데,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귀뚜라미가 ‘미래 식량’이란 이름으로 각광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고기와 비교하면 차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우선 영양성분이다. 소고기는 100g당 단백질이 20g에 불과하고 몸에 안 좋은 포화지방이 많은데 비해, 귀뚜라미에는 단백질 70g과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다.

또, 소고기 100g을 얻기 위해선 물 2200리터가 필요하지만 같은 양의 귀뚜라미를 키우는 데에는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사실 소고기는 ‘가성비’가 아주 좋지 않은데, 사료 10kg으로 소고기는 고작 1kg을 생산할 수 있지만, 귀뚜라미는 9kg나 얻을 수 있다. 온혈동물인 소와 달리 귀뚜라미는 냉혈동물이어서 사료를 체내 단백질로 전환하는 비율이 높다. 게다가 사육에 필요한 땅면적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전세계 농지의 70%를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귀뚜라미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면적은 미미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귀뚜라미의 압승이다.

환경을 얼마만큼 해치는지도 관건이다. 소가 입과 항문으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대표적인 온실가스로, 전체 온실가스의 20%가 축산업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귀뚜라미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소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맛은 어떨까. 한 방송 영상을 보면, 쌍별귀뚜라미를 볶아 우리나라 성인들에게 먹어보게 했다. 처음엔 꺼리던 이들이 한 번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건새우와 맛이 비슷한데, 비린 맛은 덜하고 고소한 맛이 좋다고 평했다. 그들은 귀뚜라미 볶음 한 접시가 싹 비워질 때까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7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법률을 개정해 식용곤충 몇 가지를 가축으로 인정했다. 식용 곤충 가운데 가축으로 인정받은 곤충은 갈색거저리 유충, 장수풍뎅이 유충, 흰점박이꽃무지 유충, 누에(유충, 번데기) 등 4종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쌍별귀뚜라미는 2016년 3월 일반식품으로 허가된 식용곤충이지만 아직 가축으로 인정받진 못했다.

식물식 만으로도 단백질을 비롯해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는 건 이젠 상식이다. 그러나 채소와 곡식을 챙겨 먹기엔 우리 일상이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환경을 파괴하고 영양소도 귀뚜라미보다 덜하고 값도 비싼 소고기를 귀뚜라미가 대체할 날이 올까. 햄버거를 먹으며 소의 눈망울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정말 올까. 아, 귀뚜라미 우는 가을날, 귀뚜라미 잡아먹을 생각이나 하는, 이토록 잔인한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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