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나 갈등을 마주했을 때, 옛 성인들의 지혜 속에서 그 답을 찾기도 한다. 이웃사람들과 관련한 속담이나 격언을 보아도 그렇다.

‘지척의 원수가 천 리의 벗보다 낫다’라는 속담은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을지라도 먼 거리에 있는 친구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도움을 받기는커녕 멱살잡이 안하면 다행인 듯하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에서 비롯한 한ㆍ일 갈등이 석 달째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 부품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한국이 금방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아베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이 이렇게 강하고 오래 지속될지는, 한국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할지는 몰랐나보다.

또한 도쿄올림픽이 다가옴에 따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무리하게 수습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지탄을 받으며 현 국제정세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 일을 겪으며 1965년 한일 협정과 독재정권 아래서 벌어진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곳에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한ㆍ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사회 안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할 판결이 하나 내려졌다.

8월 27일, 도쿄 조선 중ㆍ고급학교 졸업생 61명이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금청구 소송에서 최고 법원이 이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즉, 일본정부의 재일 조선학교 무상교육 대상 제외 정책이 적법하다는 판결이다.

게다가 올 10월부터 일본정부가 시행하는 유치원생 보육료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제외한다는 방침이 드러났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부모 또는 조부모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일본에 이주해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왔다. 재일동포들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핍박과 고통을 견뎌오며 살아왔다. 그 핍박과 차별의 첫 대상은 늘 ‘조선학교’였다.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고자했던 나라의 땅에서 조선학교를 세우고 우리의 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동포들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재일동포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일본사회에 알리고 조선학교 차별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싸워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라도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복하고 경제 보복을 일삼는 아베정부에 분노했듯이, 오래 전부터 최전선에서 싸워온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한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더 이상 차별하고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는 아베정부와의 싸움을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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