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51>
하마단, 베히스툰 비문

하마단으로 가는 길의 평원.

[인천투데이] 케르만샤에서 동쪽으로 3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 베히스툰 산이 나타난다. 자그로스 산맥이 치달리다 지쳐 몸을 낮추려는 그 지점에 마지막 힘을 쏟아 부은 듯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이 산 절벽에는 페르시아 제국 왕들이 남긴 비문 중 가장 길고 중요한, 그리하여 ‘고대 비문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비문과 부조물이 있다. 그 비문과 부조물의 주인공은 다리우스 대제이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는 캠비세스 왕이 이집트 정벌을 떠난 사이에 정치적 혼란기를 맞았다. 왕이 나라를 비운 사이에 가우마타가 스스로 왕을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가우마타는 캄비세스가 동생인 바르디아를 죽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왕의 동생임을 자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캄비세스 왕은 급히 귀국하다가 도중에 붕어했다. 그러자 그동안 속국으로 지내던 10개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페르시아는 내분에 휩싸여 국가마저 위태로웠다. 영웅은 언제나 정치적 혼란기에 나타난다. 그 영웅은 바로 다리우스였다.

다리우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었던 파르티아 태수의 아들이었다. 그는 캠비세스 왕과 함께 이집트 원정 중에 상황을 접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이끄는 왕이 될 기회를 잡는다. 다리우스는 귀국하자마자 제후들과 연합해 가우마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다리우스의 계획은 쉽게 성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심을 품은 제후들이 가우마타를 정통 계승자로 여기고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국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다리우스는 한 번 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년간 전투로 마침내 제후들의 반란을 모두 평정하고 제국의 기초를 세웠다.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는 무엇보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알리는 것이 절실했다. 그리하여 베히스툰 산 절벽에 제후들의 반란을 정벌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반란을 제압하는 그의 모습을 함께 새기게 했다.

‘거룩한 산’으로 불리는 베히스툰 산.

차장 너머로 화강암으로 이뤄진 베히스툰 산이 보인다. ‘거룩한 산’이라는 의미다. 순간, 2500여 년 전의 비문을 본다는 설렘으로 더욱 흥분한다. 비문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데 언덕에 조각상이 보인다. 조각의 주인공은 헤라클레스. 페르시아인들은 헤라클레스를 좋아한다. 아울러 레슬링을 좋아한다. 그래도 생뚱맞은 것은 나만의 생각이런가.

비문과 부조는 지상에서 약 150미터 높이에 새겨져 있다. 비문은 가로 18미터, 세로 7미터다. 하지만 멀어서 잘 보이질 않는다.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도 절벽을 오르지 못하는 한 비문과 40미터 떨어진 곳이다.

‘왕의 대로’ 출발점에 있는 비문.

비문의 중심에는 부조상이 있다. 키 173센티미터의 다리우스 대왕이 실물 크기 그대로 살아있는 듯하다. 다리우스 대왕이 왼발로 왕을 사칭한 가우마타를 밟고 있다. 그 앞으로는 대왕이 정벌한 왕 9명이 포승줄에 묶여있다. 대왕 뒤에는 참모인 인타프레네스와 고브리아스가 있다. 부조상 상단에는 아후라마즈다가 다리우스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링을 주고 있다. 비문은 권력 승계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비문이 있는 베히스툰 산은 페르시아 제국의 바빌론, 하마단, 수사를 연결하고, 동쪽으로는 멀리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쪽으로는 터키와 그리스를 잇는 ‘왕의 대로(Royal Road)’에 있다.

비문은 바빌로니아어, 엘람어, 고대 페르시아어로 기록됐다. 이 비문에 새겨진 세 언어는 당시까지 판독이 불가능했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이로 인해 그동안 창고에 보관돼있던 수천 개의 점토판 문서와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됐다. 베히스툰 비문이야말로 고대 문자 해독의 열쇠를 가진 여왕임에 틀림없다.

산 입구에 있는 헤라클레스 상.

비문에는 부조상 주위로 총 18900자가 빼곡하게 둘러져 있다.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부조상이 훨씬 빠르게 이해된다.

“나는 다리우스 왕,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페르시아의 왕이다. 이것은 내가 이룩한 업적이다. 나는 언제나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따라 행동했다. 내가 왕이 된 후, 일 년 동안 전투 열아홉 번을 치렀고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왕 아홉 명을 정복하고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사제(司祭) 가우마타다. 그는 거짓말쟁이로 자신을 ‘키루스의 아들 스메르디스’라고 속였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반란을 모의했다.”

비문은 포승줄에 묶인 죄인 8명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엘람의 아시나, 바빌로니아의 니딘투-벨, 페르시아의 마르티바, 메데의 파라오르테스, 사가르티아의 트리탄데크메스, 사제 프라다, 페르시아인 바야르다타, 아르메니아인 아라카이다. 다리우스 대왕의 정통성을 알리는 내용도 거창하다.

“반란자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반란을 일으켰다. 아후라마즈다는 그들을 내 손아귀에 인도했고, 나는 내 의지로 그들을 굴복시켰다. 나는 반란자들을 정벌해 너희가 ‘나의 왕국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너희를 보호해줄 것이다. 오늘 이후 누구든지 이 비문을 읽은 사람은 내가 행한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이 들어있지 않다.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으로 나는 이 비문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일을 성취했다.”

베히스툰 산에 있는 다리우스 왕의 비문.

다리우스는 왕위 찬탈자였다. 하지만 그가 페르시아 제국을 완성시킨 대왕으로 칭송받는 것은 왕위에 오른 이후 속국 23개를 거느리며 제국의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속국들과 관계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제국이 완성되고 강고해졌으니 ‘비문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일을 성취했노라’고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베히스툰 비문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비문이 절벽에 세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이가 위대한 대왕으로 칭송하는 다리우스 왕의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 됐다. 다리우스 대왕은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너희가 이 비문이나 조각을 보고 파괴하지 않고 보호한다면 아후라마즈다는 너의 친구가 되어, 너의 가족들을 보호하리라. 아후라마즈다는 너희가 하는 일에 대해 영원토록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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