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50>
케르만샤, 타케보스탄

[인천투데이] 케르만샤는 이란의 서쪽에 위치한 고대도시다. 이 도시는 수도인 테헤란에서 500여 킬로미터 떨어져있지만 고대 사산조 페르시아 당시 이라크의 바그다드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이라크 국경까지 거리는 약 120킬로미터로 자동차로 1시간 걸린다.

타게보스탄 석굴 입구.

사산조 페르시아는 3세기에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 동쪽으로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했고 서쪽으로는 비잔틴 제국을 압박했으며, 남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 남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제국의 발전은 계속 이어져 6세기에는 바다를 장악했다.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을 거쳐 남중국해를 잇는 무역로를 손에 넣고 왕성한 중계무역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사산 왕조의 수도인 크테시폰의 궁전에는 각국 사신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동방의 대국인 중국도 일찌감치 이들과 교류했다. 「수서(隨書)」 ‘서역전’에 사산 왕조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도성은 사방이 각각 10여 리이고 정예병사가 2만여 명이며, 코끼리를 타고 전투를 한다. 그 나라에는 사형제도가 없고, 손과 발을 자르거나 재산을 몰수하거나 혹은 수염을 깎아버리거나 얼굴에 나무표식을 걸어서 널리 알렸다. 사람이 3세 이상이 되면 한 사람당 전(錢) 4문을 세금으로 낸다. 자기 자매를 부인으로 삼는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산에 버리고 한 달 동안 상복을 입는다. 왕은 금화관(金花冠)을 쓰고 금사자 의자에 앉으며 금가루를 수염에 발라 장식한다. 금포(錦袍)를 입고 그 위에 구슬을 매단다.’

중국의 기록에서도 금(金)을 중시하는 사산 왕조 권력층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케르만샤 북쪽에는 자그로스 산맥이 둘러있다. 그곳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석굴이 있다. ‘아치의 파라다이스’라는 타게보스탄이다. 이곳에서 사산 왕조 시대 석각예술을 볼 수 있다.

아치 모양으로 이뤄진 석굴은 입구부터 1700여 년의 풍랑을 이겨낸 용사의 모습이 역력하다. 거대한 자연석을 아치형으로 파내고 4개 부분으로 나눠 각각 부조를 남겼는데 모두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이 시녀들을 대동하고 사냥을 즐기는 모습.
온갖 낙원을 새겨놓은 부조상.

입구 오른쪽 벽면은 왕이 시녀들을 대동하고 사냥하며 즐기는 모습을 새겨놓았는데 사슴 몇 마리를 잡아 낙타 등에 실어가고, 살아남은 사슴들은 놀라서 들판을 내달리고 있다. 원근법이 무시된 부조는 마치 우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왼쪽 벽면은 멧돼지를 사냥하는 모습인데, 코끼리를 동원하고 있다. 코끼리를 타고 전투를 한다는 중국 사서의 기록이 부조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수렵도 옆에는 뱃놀이도 겸하고 있다. 악단들이 연주하는 장면 옆에는 물고기가 뛰놀고 꽃이 피었다. 그야말로 타게보스탄의 진수를 보여준다.

석굴 정면에는 호스로 2세의 늠름한 기마군단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세 부분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맨 오른 쪽에 새겨진 아르다시르 2세 부조다. 아르다시르 2세는 샤푸드 2세의 동생으로 그의 재위 기간은 고작 4년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았다. 왕위에 오른 기간이 4년밖에 안 되는데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탁고(託孤)를 성실하게 지켜줬기 때문이다.

샤푸드 2세가 자신의 운명을 마감할 때가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어렸다. 그는 한 살 아래 동생인 아르다시르 2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리고 그를 불러 유언을 전했다.

“내 어린 아들이 성인이 됐을 때 그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줘라.”

아르다시르 2세가 왕위를 받고 있는 조각상.
후세의 왕들이 만들어놓은 채색 부조상.

아르다시르 2세는 형으로부터 받은 탁고를 성실하게 완수했다. 백성들에게는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다. 4년이 지나고 조카인 샤푸드 3세가 성인이 되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참으로 사심 없는 완전한 임무수행이다. 그의 이러한 행적은 여러 사람의 마음과 입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페르시아 사람들은 아르다시르 2세를 자비로운 자(Nihoukar)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덕망 있는 자(Al Djemil)라는 칭호를 붙였다.

아르다시르 2세의 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새 국가를 세운 왕이나 강력한 왕권으로 영토를 개척한 왕도 바라는 소원은 하나다. 바로 자신의 아들들이 영원히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다. 이를 지켜준 아르다시르 2세야말로 만고에 널리 추앙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또한 통치술이다. 그래서인가. 모든 위대한 제왕이 그러했듯 그에게도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인 아후라마즈다와 아나히타 여신이 왕위를 수여하고 있다.

석굴을 둘러보고 나오려다 보니 왼쪽에 타게보스탄 석굴과 어울리지 않게 채색된 왕의 조각상이 있다. 이상한 조각상이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18~19세기에 제작됐다. 당시의 왕들이 자신 또한 석굴을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선조들과 같은 왕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발상과는 달리 그 누구도 위대하고 훌륭한 왕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일갈하며 코웃음을 쳤으리라.

‘아르다시르 2세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주제에 별 개수작을 다 늘어놓네.’

석굴 앞 야외 박물관.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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