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 2년 여 전 공교육기관에 면접을 보러갔다. 약3개월 동안 근무하는 비정규직 계약직이었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다. 이곳에서 실제로 하게 될 업무가 그간 내가 교육자로서 수행해온 경험과 크게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장인이기에 앞서 교육자로서 나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면접은 큰 무리 없이 끝났다. 일어서려는 찰나 한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몇 달 안에 결혼이나 출산 계획은 없으시죠?

나는 당황했다. 정말로 이런 것을 물어보는구나 싶어서. 또, 어째서 (여성의) 결혼이나 출산 이 취업의 당락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걸까 싶어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없다고 말했고 몇 분 뒤 채용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 것을 왜 물어 보시냐는 질문이 나의 구직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또는 그 일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질문 하신 것 아시죠?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오랜 시간 내게 괴로움으로 남았다.

17일 시행된 개정 ‘채용절차법’은 면접 시 구직자의 신체 수치와 관련한 내용은 물론, 출신지역과 혼인 여부, 재산 정보, 가족의 학력과 직업 등 개인정보를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2년 전 면접에서의 결혼과 임신에 관한 질문은 이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됐다. 이러한 개정법 시행은 채용 시 갑질, 차별 발언 등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식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이상의 의미를 획득해야한다. 채용 면접은 회사가 구직자의 업무수행능력을 판단하는 자리이다. 이때 회사의 이익 창출을 위해 개인의 환경, 성별, 생활의 문제를 검열하고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한다.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이른바 위계에 의한 직장 내 갑질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제도적 차원의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의 실효성이 어떠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개정안이 ‘노동법’에 근거한, ‘노동법’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나 위계에 의한 갑질을 견제해야하는 노동 형태-가령 대학원이나 학계 내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환경-는 사각지대로 남는다.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능사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법의 최종적 효과는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개인을 존중하자는 인식을 마련하고 또 요청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 적용 범위 밖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고민해야한다.

행동 규제가 아닌 인식 제고를 요청하는 일은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수반한다. 두 법안 시행이 갖는 의의는 단지 불법 사례를 추가했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관계 안에서 자신이 상위자에 위치해있을 때, ‘나의 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거절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을 계속적으로 수행해야함을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요청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상황에서 당신의 최초 발화 의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의도가 뭐였든 당신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발화할 때 그것을 듣는 사람이 역으로 당신에게 그 질문을 해도 괜찮은지를 생각하라.

내가 당신에게 ‘선생님 임신이나 출산 계획 있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당신은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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