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바위 절벽에서 번쩍이는 화석이 된 페르시아 영웅들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바위 절벽에서 번쩍이는 화석이 된 페르시아 영웅들
  • 허우범 시민기자
  • 승인 2019.07.08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46> 쉬라즈, 낙쉐로스탐
거대한 바위절벽에 건설된 낙쉐로스탐.
거대한 바위절벽에 건설된 낙쉐로스탐.

[인천투데이] ‘왕의 옥좌’로 불린 페르세폴리스에서 서북쪽으로 10여㎞ 정도 가면 낙쉐로스탐이 있다. 이곳은 거대한 바위산에 굴을 파서 제국을 다스렸던 왕들의 안식처를 만든 곳이다. 가파른 암벽에 만든 영묘군(靈廟群)에는 왕 4명이 잠들어있다. 오른쪽부터 다리우스 2세,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순이다. 석굴 제작이 중앙에서 좌우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영묘 아래에는 황제들의 치적을 표현한 마애부조상(磨崖浮彫像)들이 있다. ‘낙쉐’는 ‘조각’을 의미하고 ‘로스탐’은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영웅을 뜻한다. 번역하면 ‘영웅의 부조’라고 할 수 있는데, 명칭과 의미가 영묘의 형상과 잘 어울린다.

거대한 황토 언덕의 바위절벽을 깎아 십자가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영묘를 만들었다. 입구 기둥을 받치는 건축물에는 부조상을 새겼다. 왜 이들은 왕들의 무덤을 이토록 높은 암벽에 뒀고 만들기도 힘든 석벽을 뚫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장(鳥葬)을 한다. 매장(埋葬)도 안 하고 화장(火葬)도 안 한다. 물론 수장(水葬)도 안 한다. 매장, 화장, 수장이 안 된다면 어디가 가장 좋은 곳일까.

이 세 가지로부터 떨어진 곳이 좋다. 그곳은 공중(空中)이다. 하지만 공중에 영묘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위절벽은 바로 그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리우스 1세 때에 와서 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키루스왕 무덤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까지 왕의 묘는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 안장했다.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영묘 전경.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영묘.

다리우스 1세의 영묘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상단부 중심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상인 아후라마즈다가 있다. 그의 축복을 받는 다리우스 1세가 왼쪽에 자리 잡았다. 오른쪽에는 신성한 불의 제단에 경배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대왕이라는 관념은 고대 통치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제사와 종교가 정치세력과 결탁해 권력을 차지하고 누려온 것은 수 만년이 됐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더욱 고도화됐을 뿐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을 누리는 데 서로 필요충분조건이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들과 같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우글거리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 아니한가.

부조 뒤에는 명문(銘文)도 새겨져있다. 그중에서 다리우스 본인의 치적을 새긴 부조를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즉, 내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통치했는지를 알려면 부조에 새겨진 인물들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모두 28개국 통치자들인데, 이들이 다리우스 대왕의 제단(祭壇)을 받들고 있다. 제단 가장자리에는 포효하는 사자상이 있고 양쪽으로는 불사조 친위대가 호위하고 있다. 제단 위로는 보름달이 있는데 다리우스를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거대한 부조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우스 대왕을 위시한 아케메네스 왕들의 엄청난 위세(威勢)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다.

영묘마다 새겨진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
영묘마다 새겨진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신인 아후라마즈다.

궁전 모양을 갖춘 석벽에는 가운데 기둥 사이로 입구가 있다. 영묘 안에는 현실(玄室) 세 개가 있는데, 각각 묘실 세 개로 이뤄져있다. 바닥은 일정한 홈이 길게 파여 있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학자들은 묘실 9개를 보고는 다리우스 1세의 가족묘라고 했다. 다리우스의 부모와 그의 두 아내도 이곳에 함께 묻혔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1세의 두 아내는 키루스 대왕의 딸인 아르티스투네아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생모인 후타오사이다.

다리우스 1세 영묘 옆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영묘가 있다. 그 사이에는 높이 7미터에 이르는 ‘기마승전도(騎馬勝戰圖)’가 새겨져 있다. 260년, 페르시아 샤푸드 1세는 동로마제국과 에데사에서 전투를 벌였다. 황제를 사로잡는 등, 대승을 거뒀다. 부조에는 포로가 된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샤푸르 1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해놓았다. 그리고 이처럼 기록했다.

‘발레리아누스는 유럽 부족 29개로 구성된 군대와 함께 전투에 임했다. 알레하와 에데사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았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장군들, 원로원 의원들, 고위 장교들을 전쟁포로로 잡아 페르시아 영토 각지로 유배 보냈다.’

아후라마즈다로부터 왕위 계승을 인증 받는 사산조 페르시아 아르데쉬르 1세.
아후라마즈다로부터 왕위 계승을 인증 받는 사산조 페르시아 아르데쉬르 1세.

「로마제국쇠망사」를 집필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부조상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사슬에 묶인 발레리안은 몰락한 귀족의 모습으로 비춰졌으며, 페르시아 왕 샤푸르는 로마 황제의 목을 발판으로 삼아 말에 올라탔다.’

석굴 영묘 앞에는 기이한 형상의 건축물이 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것이라는 정도만 이해할 뿐, 아직까지도 이 건물의 용도를 밝혀내지 못했다.

페르시아 왕조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페르시아어와 자신들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전파하며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들은 모두 아후라마즈다로부터 미리 선택된 자들이었다. 낙쉐로스탐에 새겨진 부조 일곱 개 모두 아후라마즈다로부터 왕의 징표를 수여받는 장면이 조각돼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샤푸르 황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샤푸르 황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하지만 역사의 흥망성쇠는 신조차도 막을 수 없는 법. 영원하리라던 믿음도 7세기 새로운 종교인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아랍인들은 이슬람교와 배치(背馳)된 것은 파괴했다. 그들의 차지가 된 이곳도 많이 파괴됐다. 그나마 암벽에 세워진 석굴이었던 터에 이나마 보존된 것이리라. 따가운 태양이 먼지바람을 일으킨다. 순간, 영묘들이 흙먼지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이제 낙쉐로스담은 이름처럼 고대 페르시아 영웅들의 전설로만 남아있는 듯하다.

조로아스터교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형 건축물.
조로아스터교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형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