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 아베 일본 총리가 말한, ‘징용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라는 주장은 약자를 대하는 일본 집권층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꽤 오래된 논리이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철학이다. 아베는 징용 문제를 국권 문제로 환언시킴으로써 일부 일본 권력층 속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 갈망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무사계급의 반란으로 등장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로 삼았던 논리 중 하나가 국제법과 사회진화론이다. 만국공법이라고 불렀던 당시 국제법은 조공체제로 묶여있던 동아시아 질서를 깨뜨리는데 효과적인 칼날이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들어 낸 공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야만국에서 문명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일본의 주장은 서양 따라잡기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변형시킨, 약육강식에 기초한 제국주의 지배 이론이었다. 우성인자가 열성인자를 지배한다는 사회진화론의 핵심 논리는 국가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고 인종 간에 차별이 존재하며, 문명국이 비문명국을 지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천황의 신권 국가를 지향하며 제국주의의 길을 걸어갔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최종 목적지가 조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륙을 원했고 그 너머를 꿈꿨다. 임진왜란 때 내세운 구호 ‘정명가도(征明假道)’처럼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오래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받침대였을 뿐이다. 그러했기 때문에 조선민중들을 소모품으로 데려다 쓰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권을 잃은 야만국 출신의 조선인들을 문명국인 일본의 국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인류의 진화 법칙에 부합하는, 당연한 조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인과 군벌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지식인들에게도 퍼져있었고 자본가들에게도 흘러 내려갔다. 조선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많은 지식인도 실력을 키워 일본과 대등하게 싸워야한다는 진화론의 오류에 빠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대상이 어린 아이들처럼 힘없는 민중에게 집중돼있다는 사실을 환기해보자. 초등학생들조차 교사의 권유에 속아 근로정신대로 끌려갔고, 농촌의 어린 아이들이 동네 구장의 회유를 받아 바다 건너 일본의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기도 했다. 송현초등학교, 인천여자고등학교 등도 그러한 강제동원이 일어났던 현장 중 하나다.

징용 문제는 일본의 책임을 물어야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친일분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의 업보이기도 하다. 더구나 해당 피해자들이 여전히 생존해있다. 이들에게 우리 정부나 사회가 손을 내민 건 고작해야 10여 년 안팎이다. 그마저도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 피해자들이 법을 통해서라도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한 건, 모두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이웃에 있는 징용과 징병 피해자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법원을 통해 일본과 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적 관심과 어루만짐이 함께 병행돼야할 것이다. 그것이 피해자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라고 믿는다.

일본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일본의 논리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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