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희 비정규대안센터 소장
봄이 왔다고 개나리는 담장 밖에 샛노란 빛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옷깃을 풀 수가 없다. 현실은 춥기만 하다. 이상화 선생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구절만 맴맴 돌고 있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있는 가게는 몇 달 전 내가 이사 왔을 때 순대국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칼국수집으로 변했다. 오늘은 문을 닫았다. 내일은 다른 간판이 달릴까?

인천에서 제일 큰 기업이라는 GM대우는 4월 들어 8일까지만 일을 한다. 4월 20일 조업을 한다고는 하나 모르는 일이다.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13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의 운명은 무급순환휴직이다. 큰 기업 일이라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인천에 자동차 생산업체에 고용된 사람 수가 20만명이라고 하고, 그 식구까지 하면 인천시민의 4분의 1이 넘을 것인데, 이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15년 전, “4.19항쟁이 왜 미안한 혁명이냐”고 물었던 여성노동자가 있다. 미안한 혁명(?), 미안의 혁명(?). 미완의 혁명을 그렇게 묻는 여성노동자로 인해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제 30대를 훌쩍 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어느 중소기업 노동조합 간부다. 15년 동안 현장 동료들과 함께 머리 깎고 천막치고 하면서 현장을 지켰다. 그러나 지금,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영화 속에 나올 법한 투기꾼의 작전에 말려 임금도 퇴직금도 청춘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주식이 뭔지 구경 한번 못해본 노동자들이 기업 자체가 상품이고 투자자가 투기꾼이라고는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뭐 볼 게 있다고 여기에 투자하지, 하는 생각이 전부였을 텐데…. 그래도 현장과 생존권을 지키겠다며 이리저리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을 주목해 주십시오. 한국에서 온 노동자입니다”
“당신네 나라는 경제가 어려우면 노동자를 해고합니까? 우리는 그런 기업제품 안 삽니다”

추적추적 내린 빗속을 뚫고 흘러나오는 독일어 방송이었다. 노조가 보기 싫다고 잘 나가던 회사 문 닫고 외국 가서 회사 차린다는 사장 만나려고 늙은 노동자들이 밤에는 천막 지키고 낮에는 일을 한다. 그래서 여비 만들어 독일에 갔다.

G20 정상회담이 열린 그 시간, 한국의 노동자들은 독일 원정투쟁을 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금융자본의 위기를 막자고 할 때, 한국의 노동자들은 먹고 살자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4월보다 더 잔인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25개 대기업 2008년도 사내이사(임원)의 1인당 연평균 급여 10억 2884만원.(4월 2일자 경향신문)
10대 재벌 145조, 사내 유보금 17조, 현금성 자산 47조.(4월 3일 금속노조 기자회견)
종부세·법인세·양도세 20조 감소, 정부 추경예산 총 28조 9000억원.
어마어마한 숫자가 머릿속에 꽝꽝거리며 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100만 실업자, 300만 신용불량자, 6개월짜리 알바자리, 6개월 한시적 정부 지원….

MB정부는 그래도 국민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이야기한다. 참 불통이다. 먹통인 전화기는 바꾸면 되고 깡통은 재활용하면 되지만, 불통인 정부는 어찌해야 하는지.

공룡시대는 재앙을 불러왔다. 재벌만 살고 부자만 사는 공룡사회는 멸망의 길이다. 국민도 좀 먹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카피 속 1등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기 한파 속에서도 재벌기업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지지와 노동자의 땀과 눈물 그리고 중소기업의 고통 감수와 끈기였다.

그런데 재벌기업은 자꾸 존재의 이유를 잊고 살고픈 가보다. 이제 곳간을 열어 결초보은(結草報恩)할 때임을, 그래야 자신들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할 때다.

원래 노동자들의 웃음과 기쁨, 그리고 감동… 뭐 그런 것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쓰나미가 한국경제를 삼켜버린 오늘, 노동자 이야기를 쓰는 펜은 묵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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