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7) 최초의 맥주 양조법(하)
[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7) 최초의 맥주 양조법(하)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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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의 주신 ‘닌카시’에게 바친 찬가

최초의 양조법이 문헌에 기록된 것은 거의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800년경 제작된 점토판에 수메르의 주신인 닌카시에게 바치는 찬가에 맥주 제조법이 기록돼있다. 이 찬가는 최초의 맥주 제조법에 관한 기록이다.

술의 여신에게 바치는 찬가이다 보니 그 내용이 시적이다. ‘파도가 출렁거리며 물결이 일어나고 다시 가라앉는다. (중략) 밀려오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물결처럼.’ 맥주가 발효하는 과정을 매우 시적으로 묘사했다. 까마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맥주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찬가에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잘 나타나있는데, 보리 낟알에 물을 부어 맥아를 만들고, 맥아즙에 꿀과 감미로운 향료를 섞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료의 종류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아마도 쓴맛을 내는 첨가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맥주 양조법은 크래프트 비어를 생산하는 현대 양조장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앵커 스팀(anchor steam) 양조장에서는 1989년 고대 수메르 맥주를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고대 맥주 레시피를 살려 ‘닌카시’라 이름 붙인 맥주를 만들었는데, 상업적으로 판매하지는 않았다.

고대부터 빨대 꽂아 맥주 마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유물을 보면, 당시 주로 빨대를 사용해 맥주를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맥주는 침전물이 있고 곡물 껍질이 표면에 떠있는 걸쭉한 술이었다. 맥주 표면에 떠 있는 껍질은 맥주를 오래 보존하는 데 유용했다. 껍질이 산소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맥주 보존을 위해 낟알 껍질을 걷어내지 않고 빨대를 꽂아 마셨다.

맥주를 담은 항아리를 여러 명이 둘러싸고 앉아 빨대를 꽂아 마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당시 음주문화를 보여준다. 빨대를 사용해 맥주를 마시는 방법은 이집트나 중국 등 다른 곳의 유물에서도 발견됐다. 매우 실용적인 음주방법이었기에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권들에서 공통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교와 맥주, 불가분의 관계

닌카시 찬가가 기록된 점토판의 내용을 보면, 맥주는 주로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양조사는 상당히 대우받는 직업으로 기록돼있다. 중세 시대까지 맥주를 농가에서 여성들이 빚었으니, 맥주 양조는 여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맥주 신이 모두 여신인 것도 맥주 양조를 주로 여성이 담당했던 것과 관련이 깊다고 보겠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주로 보리로 맥주를 빚었다. 바빌로니아 등지에서 발견된 기록을 보면, 맥주를 만드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고 동시에 사제였다. 특정한 맥주는 종교 행사에 사용됐기에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 성직자였던 것이다. 석기 시대 조상들이 맥주를 주술적 용도로 이용했던 전통이 계승돼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와 맥주는 그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기독교에서 맥주보다 와인을 더 중요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 주었다고 기록된 ‘만나’가 사실은 빵을 기반으로 만든 죽 같은 맥주였다는 주장도 있다.

귀족 무덤에도 맥주 갖춰놓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관개농업 방식으로 곡물을 대량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 지역에서 보리 맥주와 밀 맥주는 수천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서 점점 완벽한 술로 발전했다. 농부에서부터 왕까지 신분에 관계없이 발효음료를 즐겼으며, 유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러 명이 함께 빨대로 맥주를 마시면서 공동체 유대의식을 다졌다. 기원전 2500년 우르 왕조 푸아비 여왕의 무덤에서는 빨대와 술병이 발견됐고, 술병에는 여왕에게 할당된 하루 맥주 양인 6리터가 담겨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에 6리터의 맥주를 마셨던 것이니 우리 조상들은 모두 엄청난 주당들이었다.

연회를 뜻하는 수메르어 방켓(banquet)은 ‘맥주와 빵이 있는 장소’를 뜻한다. 수메르 왕들은 호화스런 연회를 열고 신전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이들은 각종 연회나 특별 행사를 위해 특별한 술을 만들었고, 맥주는 그런 의식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동시에 병원균을 죽여 위생적으로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음료인 맥주는 귀족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이렇게 중요한 음료였기에 사후 세계를 위해 무덤에도 맥주를 갖추어놓는 것은 당연한 문화였을 것이다.

‘마이다스 터치’ 2700여 년 전 맥주 재창조

만지는 것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마이다스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술을 저장했던 통과 술잔 등이 발굴됐다. 술독에 남은 잔여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한 결과 포도와인과 보리맥주, 벌꿀주가 혼합된 발효음료를 담았던 용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고분이 전설 속 마이다스 왕의 고분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고분에서 당시 왕족이 마신 중동아시아 고유의 맥아를 맥주 양조에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국 자후에서 만들었던 고대 맥주를 재창조한 도그피시 헤드 양조장은 마이다스 왕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고대 술도 재현했는데, 지금부터 2700여 년 전 고분에서 발견된 성분을 바탕으로 맥주를 재창조해 시판하고 있다. ‘마이다스 터치(Midas Touch)’로 명명된 이 술은 처음에 한정 생산돼 일반에 공개됐고, 지금은 양산돼 팔리고 있다. 일반적인 크래프트 비어의 두 배 정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대 맥주를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이 맥주는 ABV 9.0로 알코올 도수는 꽤 높고, IBU 12로 쓰지 않고 단 맛이 많다. 이 맥주는 주요 시음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는데, 고대나 현대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맥주 맛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