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뇌전증 치료율 제대로 알려야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며칠 전 소아 뇌전증 환자가 측두엽에 간질파가 있다는 뇌파 소견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증세를 들어보니 이상해 뇌파 시디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측두엽에만 경련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에도 경련파가 있어 중심부-측두엽 뇌전증인 ‘롤란딕 간질’ 진단이 가능한 경우였다. 측두엽 뇌전증과 롤란딕 뇌전증의 예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보호자에게 롤란딕 뇌전증이라 알려주고 완치율이 100%에 가깝다고 이야기해줬다. 부모는 안심하고 이후 치료를 상세하게 의논할 수 있었다.

환자들이 뇌전증에 공포감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지’이다. 치료하면 나을지 낫지 않을지 잘 모르기 때문에 미래 예측이 불가능해 발생하는 공포감이 크다. 혹시 아이가 평생 뇌전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진료할 때 치료율과 치료 가능성을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대부분의 뇌전증은 뇌파 판독으로 예후를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다. 나는 매번 뇌파 판독에 기초해 완치 가능성이 몇 퍼센트인지 이야기해준다. 롤란딕 뇌전증의 완치율은 100%에 가깝다. 하지만 측두엽 내 간질이라면 완치율은 낮다고 봐야한다. 그러므로 뇌파 소견에 따라 환자의 미래는 천양지차가 난다.

그렇지만 의사의 의료행위에는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부분 간질에 효과가 있는 항경련제를 동일하게 처방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는다. 환자 처지에서는 완치율이 100%에 가깝다는 것과 완치율이 낮다는 것이 매우 큰 차이인데도 말이다. 정확히 알아야 공포감이 사라지고 이성적이면서 합리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

롤란딕 뇌전증, 소발작, 후두엽 뇌전증 등 양성 소아 뇌전증은 다양하다. 더구나 정확하게 롤란딕 부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주변부에 이상파가 발견되는 롤란딕 간질의 변형이라 추정되는 다양한 소아 간질도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 완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알려주는 게 환자의 공포감을 제거해준다.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소아 뇌전증도 다수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영아연축, 결절성경화증일 것이다. 간혹 뉴스에서 ‘항경련제를 이용한 영아연축 완치율 70% 이상’이라는 보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과장됐다. 경련이 멈추는 것은 70% 이상이라 할 수 있지만, 아동이 정상 발달하는 것은 5%에서 10% 미만이다. 의사에게는 경련이 멈추면 치료지만, 환자 처지에서는 장애아가 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언어능력도 없는 지적장애아가 되는 것이 치료는 아니지 않는가. 영아연축 완치율은 정확히 표현하면 5%가량이다.

결절성경화증도 마찬가지다. 영유아기 결절로 인한 뇌전증에 노출되면 경련이 조절되지 않고 인지 발달 또한 저하돼 지적장애가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항경련제를 몇 종류씩 과다 사용하지만 경련이 조절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밖에 레녹스가스토증후군, 드라베증후군, 돌이 안 된 신생아 경련 등도 마찬가지로 항경련제가 잘 듣지 않으면서 발달 지연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난치성 소아 간질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경련이 멈출 확률이 높지 않고 설혹 경련이 멈추어도 발달장애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고지해야한다. 이런 고지 없이 항경련제만 반복 처방한다면 부모는 아이가 비장애아로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치료를 받게 된다. 이는 정확한 정보 고지를 기피해 만들어지는 과잉진료일 뿐이다.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환자는 난치성 질환인지 아닌지, 불안에 떨며 치료를 받는다. 완치가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완치율이 높은 것은 높다고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이 형성될 리 없다. “예후가 매우 좋대요”라는 말 한 마디로도 환자는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일선 의사들은 항경련제만 처방하면 그만이라는 자기중심적 진료 태도로 예후를 언급하는 것을 기피한다.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것은 한방치료 또한 마찬가지다. 뇌파 판독에 기초해 진료하는 한의사가 거의 없다 보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예후를 정리해주는 한의사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역시 공포감을 걷어주는 기능은 하지 못한다.

불필요한 공포감을 주는 게 환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듯, 불필요한 희망을 주는 것도 환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다. 그래야 공포감을 이겨낸다. 그래야만 사회적 편견을 이길 정신적 힘이 생긴다.

※ 김문주 원장은 소아 뇌신경질환 치료의 선구자로서 국제학술지 E-CAM에 난치성 소아 신경질환 치료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뇌성마비 한방치료 연구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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