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등했지만 반쪽만 비출 수 밖에 없는 ‘슬픈’ 등대
북측으로 비추면 이제는 중국어선 불법조업 안내
해수부ㆍ인천시 ‘서해5도 민관협의체’ 속도 낸다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서해를 비출 옹진군 연평도등대가 45년 만에 다시 켜졌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7일 오후 7시 20분 연평도등대에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준하 인천시 행정부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점등식을 개최했다.

연평도 서남단 해발 105m 지점에 있는 연평도등대는 1960년 처음 불을 밝혔다. 민어와 조기잡이가 파시를 이룰 정도로 어황이 좋을 때 연평도 등대는 불을 밝혀 어선들의 뱃길을 안내했다.

연평도등대가 지난 17일 45년 만에 다시 불을 밝혔다.

그러나 불빛이 남파간첩의 해상 침투를 쉽게 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는 지적에 따라 1974년에 가동을 멈췄다. 이후 시설물까지 폐쇄하면서 1987년 완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사라졌던 등대가 지난 17일 45년 만에 돌아왔다. 연평도등대의 마지막 근무자였던 김용정(89) 전 연평도등대소장과 연평도 어민들은 45년 만에 불을 밝힌 등대를 바라보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 이들은 기쁜 마음과 함께 서해 풍어와 평화를 바랬다.

등대 재점등은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어장확대의 후속 조치다. 해수부는 4월 1일부터 서해 5도에서 일출 전 30분, 일몰 뒤 30분 등 1시간의 야간 조업이 허용됨에 따라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연평도등대 재 점등을 결정했다.

최신형 동명기로 교체된 연평도등대의 불빛은 20마일(약 32km)까지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안보상 이유로 북쪽을 향한 창에는 가림막을 설치했다.

지난해 4ㆍ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추진되고 서해 5도 야간 조업이 시행되는 등 주변 조업 여건이 변하자 해수부는 연평도등대를 재 점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45년 만에 재점등했지만 반쪽만 비추는 슬픈등대

연평도등대.(사진제공 인천시)

연평도등대는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재점등 했다. 물론 올해 2월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 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는 지난해 9월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이지만, 45년 만의 연평도등대 재점등은 의미가 남다르다.

남북은 지난해 9월 평양회담 때 ‘4ㆍ27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군사 분야 합의서는 서해평화수역 조성과 시범 공동어로구역 지정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담고 있다.

남북은 서해 남측 덕적도~북측 초도에 이르는 해역, 약 80㎞를 완충수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이 지역에서는 포병ㆍ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훈련 등이 중지키로 하고, 지난해 11월 일제히 포문을 닫았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연평도 등대가 45년 만에 부활했지만, 공동어로구역 지정 등에 진척이 없어 여전히 남쪽만을 비춰야 하는 ‘슬픈 등대’다.

등대는 켜졌어도 어민들 가슴은 중국어선에 타들어가

남한 연평도와 북한 석도사이 NLL 수역에 진을 치고 조업 중인 중국어선(5월 6일 촬영).

아울러 등대는 켜졌을지 몰라도 연평도 어민들의 가슴은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거멓게 타들어 간다.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어장확대로 기대를 했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어선이 쌍끌이로 황금어장을 바닥까지 훑는 바람에 꽃게는 ‘금게’가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중국어선이 북방한계선 일대에 진을 치고 있는데 등대를 북쪽으로 비출 경우 북한의 침투를 이롭게 한다기보단,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 중인 중국어선에게 뱃길을 안내해 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연평도등대가 어민도 살피고 서해 평화를 밝히는 등대로 거듭나려면 서해평화수역 지정과 시범 공동어로구역 지정이 시급하다. 또 남북이 공동으로 북방한계선 일대를 관리하면 중국어선을 막아내고 해상파시 등을 통한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베트남 제2차 북미정상 회담이 성과 없이 막을 내리면서, 미국의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수산업 분야 남북 경제협력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은 어렵지만 환경분야 연구조사는 가능하다. 조현근 서해평화수역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북미관계 교착상태에서도 한강 하구 생태를 조사했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양생태계에 대한 남북 공동 연구조사가 가능하다. 해양생태조사는 유엔 제재 사항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또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하면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차단할 수 있다. 또 조사에 선박과 남북 해군 또는 해경의 지원이 필요한데, 이때 연평도등대가 필요하다”며 “해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지정할 수 있는 만큼, 서둘러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연평도등대 점등식에 참석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준하 인천행정부시장, 박경철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등은 이날 서해5도어민연합회가 서해평화 정책 수립을 위해 제안한 서해5도 민관협의체 구성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해수부는 지난해 서해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지정 논의를 위해 구성한 '해수부 서해5도 민관협의체' 운영에 내실을 기하기로 했고, 시는 박남춘 시장이 약속한 '인천시 서해5도 민관협의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운영을 본격화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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