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88.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
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88.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5.1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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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 장면 1. 사납게 들리는 새 소리에 집 밖을 나가보니 풀숲 사이에 노란 고양이가 있었다. 머리 위에선 직박구리가 낮게 날며 큰소리로 우짖었다. 고양이 바로 앞에는 어린 새 한 마리가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고양이가 몇 걸음 물러섰고, 어린 새도 정신을 차렸는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어미 새를 향해 뛰었다. 담장에 앉아 어서 날아오라는 듯 큰 소리로 우는 어미 새와 담벼락에 막힌 어린 새, 그리고 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 마음이 급해진 나는 새끼 새를 어미에게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새끼 새는 점점 더 멀리 달아났다. 내가 돌아서는 순간 새끼 새는 고양이의 한 끼 밥이 되리란 걸 알기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난, 이후로 고양이가 더 밉고 무서워졌다.

#장면 2. 고양이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화단에서 고양이가 입에 커다란 비둘기를 물고 있었다. 비둘기는 이미 죽은 듯했다. 그 옆엔 또 다른 고양이가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듯,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힘들게 사냥한 비둘기를 너에겐 줄 생각이 없으니 저리 꺼져 달라는 의미의 울음인 것 같았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대여섯 사람이 주위에 모였다. 고양이가 놀랐는지 비둘기를 입에서 내려놨다.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윙윙 소리가 났다. 다 죽은 듯했던 비둘기의 필사적인 날갯짓. 하지만 비둘기는 높이 날지 못했다. 며칠 뒤 경비원에게 이후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 담벼락에 부딪혀 죽은 비둘기를 쓰레기봉투에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배 부분엔 고양이 발톱 자국이 무수히 많이 나 있었다고. 사력을 다해 새를 잡은 고양이, 고양이에게 잡힌 새, 다 잡은 새를 사람들 때문에 놓친 고양이,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비상을 한 새, 귀한 식사를 잃은 고양이의 허망한 울음,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죽은 새…. 한동안 고양이와 새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장면 3. 외출하고 집에 오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는 주차된 차 아래로 도망갔다. 고양이의 배가 축 늘어져 출렁이는 걸 보니 젖먹이 새끼가 있는 듯 했다. 다음 날 같은 자리에서 또 그 고양이를 마주쳤다. 고양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도시에서 새끼를 기르느라 얼마나 고될까. 고양이가 측은했다. 당장 뭐라도 주고 싶은 맘에 멸치를 물에 담가 간기를 뺀 뒤 집 담벼락에 물과 함께 놔뒀다. 다음 날 아침 가보니 멸치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론, 새끼를 잃고 누군가에게 내쫓긴 고양이라 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보름 가까이 멸치를 주는 동안 그 고양이와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이제 멸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이 고양이의 밥을 계속 챙겨줘야 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결심했다. 그 고양이는 내 첫째 딸 미미가 됐
다.

# 장면 4. 부평아트센터에서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이란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양이를 주제로 한 여섯 작가의 그림, 설치물, 사진, 책을 한 곳에 모았다. 생태와 환경, 인간과 동식물,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일상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전시라고 한다. 고양이 집사인 나도 다음 주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미미가 외출을 싫어해 함께 갈 수 없는 게 아쉽다.

#장면 5. 얼마 전 은퇴한 탐지견 ‘메이’를 학대 수준의 과도한 동물실험에 재이용하다 숨지게 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일어난 일이다. 비글 품종 복제견인 메이는 공항에서 마약탐지견으로 생의 대부분을 보내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 서양에선 1600년대부터 동물실험에 맞서왔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동물실험 윤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관련 법률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무관심했던 내 마음이 고양이에게 가는 길은 그리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실험실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지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빨리 제도가 정비됐으면 한다. 법과 제도가 앞서나가면 윤리도 뒤를 따르게 마련이니까. 생명이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귀한 것이 아님을 늘 기억해야한다.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