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연중기획] 12년 지켜온 배다리마을, 마을 운명 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2019 연중기획] 12년 지켜온 배다리마을, 마을 운명 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 장호영 기자
  • 승인 2019.04.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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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13)
동구 배다리마을의 ‘스페이스빔’

[인천투데이 장호영 기자] 

<편집자 주>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 갈등, 각종 지역 문제로 인해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함께하는 삶의 시작점인 ‘마을’을 나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운동과 사업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 인천은 8개 구와 2개 군으로 이뤄져있고, 구ㆍ군마다 수십 개의 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다. ‘마을’이란 동 단위 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이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함께 하면서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이 속한 마을에 관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룰 때 진정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도시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세포와 같고, 그래서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살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 <인천투데이>는 올해 인천의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만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마을 두 동강 낼 산업도로 막기 위해 배다리로

2017년 9월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폐기를 촉구하는 주민행동을 하고 있는 배다리 주민들과 배다리위원회 활동가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2017년 9월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폐기를 촉구하는 주민행동을 하고 있는 배다리 주민들과 배다리위원회 활동가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인천시는 교통난 해소를 목적으로 1998년 8월 중구 신흥동 삼익아파트와 동구 동국제강을 잇는 길이 2570m, 폭 50~70m의 산업도로 건설 계획을 세우고 2006년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배다리 주민들과 문화ㆍ시민단체들은 근대 역사를 간직한 배다리마을이 두 동강 난다며 반대했다. 현재 도로 건설은 중단된 상태다. 다시 건설공사를 할지 도로 건설계획을 폐지할 지 결론이 나진 않았다.

2016년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한미서점, 최근에는 관객 16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의 수원왕갈비통닭 촬영지인 아울렛팬시 등은 배다리마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배다리마을은 주민들과 이곳에 둥지를 튼 아벨서점, 퍼포먼스 반지하, 스페이스빔 등 지역공동체문화 공간 구성원들의 산업도로 건설 반대운동으로 지금까지 지켜질 수 있었다. 지역공동체문화 공간인 스페이스빔(대표 민운기)은 배다리에 위치한 옛 인천양조장 건물을 임차해 리모델링한 뒤 2007년 9월 개관했다.

민운기 대표는 2007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공공미술프로젝트 ‘도시유목’을 진행하며 배다리 공터에 텐트 치고 활동하다 산업도로 건설 계획을 알았다. 도로를 내기위해 철거된 주택들과 시뻘겋게 드러난 맨땅에 뒹구는 가재도구들을 보며, 아무리 빨리 지나가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이렇게 사람 사는 곳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파괴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더욱이 배다리가 인천 근ㆍ현대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임을 알게 된 후 배다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스페이스빔이 지향하는 ‘내 안의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삶의 공간에 작동하는 일방적 지배 권력을 비우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개인의 의지와 관계로 대안적 도시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와도 맞았다.

스페이스빔이 둥지를 튼 인천양조장 건물은 1927년부터 인천의 대표 막걸리인 ‘소성주’를 생산하던 곳이다. 막걸리 맛을 결정하는 지하수가 예전 같지 않아 1996년에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지금은 부평구 청천동 공장에서 소성주를 생산하고 있다. 방치된 인천양조장 건물은 2003년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가 아벨전시관으로 잠시 사용했고, 스페이스빔이 자리를 잡기 전 ‘퍼포먼스 반지하’가 사용하기도 했다.

산업도로 반대 주민대책위와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발족
 

2009년 열린 동네미술공장에 참여한 어린이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2009년 열린 동네미술공장에 참여한 어린이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산업도로 건설로 배다리마을이 갈라지고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스페이스빔뿐 아니라 다른 예술단체와 문화공간들이 배다리로 근거지를 옮겼다. 그 이후 도로 건설의 부당함을 제기하던 주민들과 ‘산업도로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인천지역 문화ㆍ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도 발족했다.

주민대책위와 인천시민모임은 도로 관통으로 초래될 여러 피해들을 알려내고, 인천시에 공사 중단과 무효화를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항의집회 등으로 대응했다. 한편으론 배다리가 지닌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안팎에 알리기 위해 언론에 칼럼 기고, 소식지 발간, 초청강연회 개최 등을 진행했다. 투쟁 일변도가 되지 않기 위해 지역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해 마을의 가치와 특성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자리로 만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배다리에 다른 큰 사안이 터졌다. 배다리 한쪽 마을을 포함해 인근 동인천역 일대를 전면 철거하고 쇼핑몰과 아파트 등을 건립하는 대규모 재정비촉진사업이 추진됐다. 이 계획이 구체화될 경우 배다리를 비롯한 역사공간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주민들도 쫓겨날 것이 뻔해 반대 목소리를 내며 싸울 수밖에 없었다.

반대 싸움뿐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
 

2016년 조성된 생태놀이숲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2016년 조성된 생태놀이숲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사진제공 스페이스빔)

스페이스빔은 두 가지 싸움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지역에서 양조장이 주민들에게 했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2008년 진행한 ‘동네미술공장’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이 사용하던 물건이 고장 나면 수리를 하고 새롭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만들어 가져가는 방식이었고, 작가들은 주민들이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2008년 9월에는 작가와 주민들이 서로 가진 재주와 능력, 일손 등을 나누는 배다리생활문화공동체 ‘띠앗’도 출범시켰다. 이 모임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도 운영했다. 마을 곳곳에 흩어져있는 역사ㆍ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 지도 위에 표기하는 문화지도 그리기 활동도 했다. 이는 2012년 배다리의 역사와 이곳 출신 인물들을 소개하는 책자 ‘배다리갈래’, 2014년 ‘동구 골목문화지도’, 2015년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 2017년 근대건축과 생활문화리서치 프로젝트 결과보고서 ‘송림시장’ 발간으로 이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조성’을 공약으로 내건 인천시장과 동구청장 후보가 당선되면서 산업도로와 재정비촉진사업도 변화를 맞았다. 하지만 전면 취소되진 않았고 기약 없이 연기됐다.

바뀐 동구청장의 협조로 주민들과 함께 도로 공사가 중단된 토지 일부를 텃밭으로 가꿨다. 텃밭에는 정자가 놓였고, 여름에는 ‘생태캠프 밭캉스’를 열기도 했다. 2016년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며 자연생태를 접할 수 있는 생태놀이숲을 조성해 배다리 아이들뿐 아니라 동구 관내 초등학교 아이들과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그런데 이 공간은 다시 바뀐 동구청장에 의해 2017년에 철거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2018년 10월 주민들과 배다리 마을을 청소 중인 모습.(사진제공 스페이스빔)
2018년 10월 주민들과 배다리 마을을 청소 중인 모습.(사진제공 스페이스빔)

지난해 다시 시장과 동구청장이 바뀌어 산업도로가 완전 폐기되거나 지하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재정비촉진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마을텃밭으로 사용하던 공간은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이 절반, 동구가 조성한 화단이 절반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12년간 이어온 배다리마을 지키기 활동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민운기 대표는 “마을의 운명은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해야한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드라마와 영화 성공으로 관광객이 마을에 많이 오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관광 논리와 보여주기식 사업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제대로 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 결과로 관광객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며 “다른 지역처럼 원도심 활성화 후 기존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마을과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 대안을 찾는 실험을 계속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