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디 바비디 부”

월드스타 ‘비’가 월드뮤직 어워드의 트로피를 들고, 국가대표 미남 장동건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격에 겨워, 노래하듯 외치는 수상소감이다. 적어도 30초짜리 광고 속에서만큼은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인 것이다.

어디 광고만 그런가? 소위 막장드라마로 불리는 요즘 드라마들이 다 그렇다.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아내의 유혹’을 보라. 자신을 죽이려 한 남편과 며느리를 내동댕이친 시댁에 복수하기 위해 구은재는 민소희로 다시 태어난다. 전혀 다른 인간이 되기 위해 평범하고 순해빠지기만 했던 구은재는 영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춤을 배운다. 평범한 전업주부였고 학력도 그다지 높지 않았던 구은재는 몇 년 만에 수준급 영어·일본어·회화·춤 실력을 모두 갖춘다.

영어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지낸 게 몇 년차지만 그다지 해결되는 기미가 안 보여 갑갑해 죽겠는 나로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다. 정말이지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다.

최고의 꽃남 4인방이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는 ‘꽃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꽃남 4인방이야 국내 최고 재벌가·명문가의 자식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세탁소집 딸 금잔디 역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다. 곤경에 처했다 싶으면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을 꼭 빼닮은 꽃남 왕자님들이 짠, 하고 나타나주시니 이 어찌 “비비디 바비디 부”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광고 속, 드라마 속 “비비디 바비디 부”는 현실로 돌아오면 허탈하다 못해 격분을 자아내는 주문이 되고 만다. 다니던 회사는 경기가 어려우니 몇 달씩 무급으로 쉬라고 한다. 그보다 더 어려운 곳은 아예 나가라고 한다. 생활비 줄여가며 푼돈 모아 펀드에 투자했던 서민 개미투자자들은 바다 건너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그 와중에 자식만큼은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없는 살림에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들여가며 키운 자식들은 겨우 들어간 대학 졸업하고 고작 임시직·비정규직 일자리에나 들어가면 다행이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사회인이 되자마자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혀 버린다. 도대체 생각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평범한 서민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나마 환상적일 것 같았던 연예계도 별다르지 않은가 보다. 얼마 전 자살한 한 여자연예인은 눈부시게 화려한 연예인의 뒷면 어두침침한 현실을 드러내주었다. 스타가 되고 싶으면 성도 상납하고 폭력도 감수해야 하는 게 그쪽 동네의 질서인가 보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 가야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인 세상이 있는 건가? “비비디 바비디 부”는 광고 속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주문인가?

생각해 보니 딱 하나 있다. 운하 파고 싶으면 국민들이 뭐라 하든 그냥 파면 되고, 언론사들 제 맘대로 주무르고 싶으면 방송법 바꾸면 되고, 뉴타운 만들고 싶으면 사람이 죽든 말든 철거하면 되고, 제2의 롯데월드를 세우고 싶으면 그냥 세우면 되고, 남북관계 잘 못 푼다고 욕먹겠다 싶으면 20년도 더 지난 테러범이라도 떠받들어 북풍 한번 불어주면 된다. 생각대로 하면 되는,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면 되는, 청와대의 한 사람이 떠오른다.

80년대 중반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서울 개최를 앞두고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국민가요로 뜨던 시절이 있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대한민국”을 노래한, 아주 목적의식적인 ‘건전’가요였다.

그 노래에 비하면 ‘비비디 바비디 부’는 노골적이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배포한 노래도 아니다. 그러나 ‘아 대한민국’보다 경쾌하기 짝이 없는 ‘비비디 바비디 부’가 훨씬 더 끔찍하게, 무섭게 느껴진다. 이런 절망적인 장송곡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청와대의 누군가가 실제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 하는 동안, 그 생각 때문에, 그 생각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실행한 숱한 법안과 정책과 제도 때문에 생각대로는커녕 생존조차도 보장받을 수 없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비비디 바비디 부 뒤에 가려진 우리들의 초상이다.
▲ 이영주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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