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란 현실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세계”
“신비란 현실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세계”
  • 문하연 시민기자
  • 승인 2019.01.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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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연 시민기자의 그림의 말들 -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숨겨진 진실은?
 

연인들(1928, 뉴욕 현대미술관)
연인들(1928, 뉴욕 현대미술관)

남녀가 얼굴에 하얀 천을 덮고 키스를 하고 있다. 강렬하고 기괴하다. 푸른색과 붉은색,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강렬함을 배가한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연인들’이다.

두 연인은 얼굴을 가린 채 사랑하고 있다.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역설일까. 어쩌면 사랑이란 것은 적당히 가리고 있어야 유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저렇게 자신을 감춘 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 반대로 속을 다 까서 보여준다고 그 사랑이 영원하리란 보장도 없다.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살아 움직이니까. 하얀 천으로 가려진 얼굴이, 숨겨진 진실이 궁금하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 고전적 주제로 여러 버전을 그렸다. 진부한 표현을 극도로 꺼린 그는 그림으로 명백히 잘 아는 것을 혼동 시키고자 했다. 그가 회화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은폐돼있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사고를 마비시키는 사랑과 감각적 키스 너머의 그 무엇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는 묻는다.

“나는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싶다.”

초현실주의 거장의 마중물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 레신에서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재단사였고, 어머니는 모자 상인이었다. 그림을 시작한 건 12세부터였는데, 13세 어느 날 평소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몇 번 했던 어머니가 샹브르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날 그는 어머니 수습과정을 지켜봤다. 강물에서 건졌을 때, 입고 있던 하얀 잠옷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인들’의 모티브가 어머니의 죽음 장면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지만, 그는 말도 안 된다고 부인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세 아들을 데리고 샤를루아로 이사 한다. 마그리트는 그곳에 있는 아테네고등학교에서 고전인문학을 공부했는데, 별 흥미가 없었다. 15세이던 이 무렵 마을축제에서 훗날 아내가 될 조르제트 베르제를 처음 만난다.

그는 1916년 브뤼셀의 아카데미 ‘드 보자르’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며 예술적으로 교감할 친구들과 교류한다. 이 시기에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입체주의나 여러 시점에서 파악한 이미지를 같은 화면에 중복하는 미래주의 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마그리트의 미래주의 그림의 시작은 이랬다.

“누군가 아마도 장난을 치려고 미래주의 작품 전시회 도판이 실린 카탈로그를 내게 보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 장난 덕분에 나는 새로운 회화 방식과 친숙하게 됐고 무척 흥분됐다.”

그는 1920년에 조르제트 베르제를 우연히 다시 만났고, 2년 뒤 그녀와 결혼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벽지 공장에서 장미를 그리거나 포스터 디자인과 광고 일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중 ‘발로리 플라스티치’에서 발행한 카탈로그에 이탈리아 화가인 조르조 데 키리코가 그린 ‘사랑의 노래’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시가 회화를 주도하는 특징’을 감지했으며 사물들의 뜻밖의 조합으로 이뤄진 그림에서 회화의 새로운 모습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전통으로부터, 상투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사랑의 노래’는 그가 지금의 초현실주의 거장이 되기 위한 마중물이 됐다.

‘이미지의 배반…’ 기존 언어질서와 사물의 본질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8~29, 로스엔젤리스 미술관)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8~29, 로스엔젤리스 미술관)

그는 파이프를 실제처럼 똑같이 그려놓고 그 아래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다. 이 그림의 제목 또한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무슨 뜻일까. 이미지 재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사물의 본질과 언어가 일치하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파이프 자체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파이프라는 것은 파이프라는 단어와 연관성이 없음에도 당연히 파이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전복을 일으키고자 했다. 기존 언어 질서의 근간을 흔듦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생각하고자 함이었다. 사람들은 이 그림에 충격을 받았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유명한 파이프…? 나는 거기에 대해 비난 받을 만큼 받았다. 하지만…당신은 그것을 채울 수 있는가? 아니, 그것은 그려진 것일 뿐 파이프가 아니다. 만약 내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썼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됐을 것이다.”

그는 또한, 사물이 이름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가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헤겔의 휴일’과 ‘콜코드’ 사고의 자유로움과 신비

헤겔의 휴일(1958, 개인 소장)
헤겔의 휴일(1958, 개인 소장)

이 그림은 기호학에서 예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회화에서 단어와 이미지를 동일하게 봤지만, 그는 이미지와 단어를 별개로 봤다. 그리고 그가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점은 작품 안에 신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신비란 인습에서 벗어나 현실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세계다. 자신의 모든 작품의 목적이 신비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회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고의 자유로움에 신비를 더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미술가라는 이름을 거부했다. 대신 자신은 생각하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이 음악이나 글로 생각을 나누듯이 자신은 회화로 사고를 교류하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아마도 이 그림을 보고 그가 붙인 제목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것 같다. 바로 ‘헤겔의 휴일’이다. 컵과 우산, 그리고 헤겔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이 그림의 시작은 컵이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재적인 컵을 그리고 싶었다. 세잔이 사과를 그랬던 것처럼. 드로잉만 100개가 훌쩍 넘었을 때, 그는 쭉쭉 그은 선들에서 우산을 발견했다. 그리고 물과 도저히 무관할 것 같은 우산을 컵 아래 배치하니 뭔가 번뜩 떠올랐다. 이 작품에 영감을 준 것은 변증법의 대표적 철학자 헤겔이다.

“나는 헤겔이 두 가지 상반되는 작용을 하는 이 물건들에 아주 민감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을 허용하지 않는(물리치는) 동시에 물을 허용한다(품는다). 나는 그가 (휴가 때처럼) 즐거워하거나 재미있어 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 그림을 ‘헤겔의 휴일’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이렇게 의외의 사물을 의외의 장소에 배치하는 것을 초현실주의에서는 ‘데페이즈망’이라고 부른다. 원뜻은 ‘추방하는 것’인데,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 이런 기법을 사용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된 ‘올마이어의 성’,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피레네 성’.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의 복제 장면의 모티브가 된 (우리나라에선 겨울비로 알려진) ‘공콜드’는 팝송 ‘it`s raining men’의 모티브이기도하다. “오늘밤 열시 반쯤 역사상 최초로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질 예정입니다. 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할렐루야~~”라는 가사의 그 노래다. 폴 매카트니도 마그리트의 팬으로 유명한데, 비틀즈의 자회사 애플 레코드 로고도 마그리트의 사과에서 가져왔다. 이밖에도 마그리트의 작품은 팝아트와 그래픽디자인에 큰 영향을 줬다.

골콘다(1953, 휴스턴 메닐 컬렉션)
골콘다(1953, 휴스턴 메닐 컬렉션)

골콘다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던 인도의 옛 도시로, 쇠락해 폐허만 남은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부의 상징인 곳이다. 정장 차림에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떠오르고 있다. 이 옷차림은 그가 평소에 즐겨 입던 스타일이다.

“중절모는 전혀 독창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중절모 쓴 남자는 익명성 속에 숨은 미스터 애버리지(Mr. Average, 평균인)다. 나 역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대중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재단사 아버지와 모자 상인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인지도 모른다. 기발하고 독특한 작품을 다수 남긴 마그리트는 1967년, 69세의 나이로 브뤼셀에서 암으로 눈을 감았다.

[참고서적] ‘르네 마그리트’(마로니에 북스, 마르셀 파케, 김영선), ‘르네 마그리트’(시공사, 수지 개블릭, 천수원), ‘플랑드르 화가들’(뮤진트리, 금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