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정(情) 많은 도배 기술자 신현학씨

▲ 15년 동안 익힌 도배기술로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정말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신현학(55)씨.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빈곤층이 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선정돼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나마도 없는 처지이면 정말이지 살아가는 게 막막하다. ‘팍팍한 세상,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으니 세상이 돌아가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3월 6일 오전 10시께 도착한 청천1동 효마을. ‘어떻게 이렇게 졌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빼곡한 빌라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알려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남자가 도배에 열심이다. 지업사를 운영하면서 틈틈이 생활이 어려운 집의 도배를 무료로 해주고 있는 신현학(55)씨였다.

신씨에게 이 집을 소개시켜준 박문순(여ㆍ청천1동 25통장)씨가 일손을 돕고 있다. 박 통장은 “연변에서 온 사람들인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아이들 셋과 살고 있고, 아이들의 엄마는 얼마 전에 죽고 아버지는 특별히 돈벌이가 없다. 수급자도 안 돼 사정이 딱하다”고 조심스럽게 들려준다.

신씨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빼고 정말 형편이 어려운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집을 골라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만도 열 곳 넘게 도배나 장판을 갈아주고 창문 비닐 공사도 해줬다.

신씨가 이 일을 시작한 특별한 동기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도 아니다. 오래 살고 있는 이 동네에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중에 세상을 떠나더라도 뭔가 남기고 싶은 생각에서다. 그래서 ‘좀 알리고 살아라’는 주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라고 지나치고 말았다.

전라남도 함평군이 고향인 신씨는 여러 곳을 떠돌다 1972년 무렵 고향 선배들이 많이 사는 청천동으로 와 터를 잡았다. 이일 저 일을 하다가 마지막엔 신발가게를 했다. 가게 일이 바쁘지 않았던 그때, 아는 사람이 점심이나 줄 테니 따라다니라고 해서 따라나섰던 것이 그의 도배 인생의 시작이다. 벌써 15년 됐고, 지업사를 직접 운영한지도 10년 됐다.

신씨에게 가족에 대해 묻자, 옆에 있던 박 통장이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이 이야기는 해야겠다”고. 신씨에겐 지난해 이맘때쯤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이 있다. 아들은 군을 제대하고 한양대 복학을 일주일 앞두고 급성백혈병으로 눈을 감았다.

당시 신씨는 청천1동에서 통장 일도 했는데, 청천새마을금고에서 아들에게 장학금 120만원을 줬다. 청천1동엔 대학생 자녀를 둔 통장이 신씨 말고 세 명이 더 있었는데, 신씨는 세상을 떠난 아들 장학금에다 자신의 돈 60만원을 더해 세 통장에게 나눠줬다.

▲ 도배가 끝나면 꼭 쌀도 주고 오는 신씨는 "도배는 기술이고, 쌀은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 통장의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했던지 신씨는 “다 지난 이야기를 뭐 하러하냐”고 한마디 하고 도배 일을 재촉한다. 이 일을 끝내고 주문 들어온 돈벌이를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오전에 해줄 수 없냐고 주문이 들어왔지만, 아무리 봉사일이라도 먼저 약속한 일이기에 오후에나 할 수 있다고 미뤘다. 그래도 신씨는 습기가 차 얼룩진 곳에는 본드 칠을 먼저 하고 풀칠한 벽지를 바르는 세심함을 빼놓지 않는다.

일이 거의 끝나 가는데 벽지가 조금 부족하자 신씨는 박 통장을 시켜 차에서 가져다달라고 부탁한다. 잠시 후 돌아온 박 통장의 손에는 도배지와 함께 쌀 한포대가 들려있다. 신씨가 이 집에 주기위해 미리 준비해온 쌀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도배도 고마운데 이리 쌀까지 주면 어떻게 하냐”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신씨는 “도배는 기술이고, 쌀은 내 마음”이라며, 도배를 해줄 때마다 쌀을 주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한번은 다른 통장의 추천을 받아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도배를 해주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문이 잠기고 없었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 할머니가 있었다. 딸네 집에 다녀온 할머니는 도배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신씨가 그러면 뭐가 필요하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난 쌀이 좋다”고 했다. 그 때부터 신씨는 일을 해주고 그냥은 못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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