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킬로그램짜리 귤 한 박스가 택배로 왔다.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것을 선착순으로 판매한다는 지인의 글을 읽고 빛의 속도로 입금한 지 사흘 만이다. 귤 한 봉지 사둔 것이 있었지만 택배가 올 때쯤이면 싹 먹어치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귤은 아직 절반이나 남은 상태. 식구도 없는 집에 귤 한 박스라니, 이건 욕심이다.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식성이 좋고 먹는 걸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 언니와 동생은 나를 ‘계란귀신’이라 불렀다. 엄마가 간식으로 삶아준 계란을 한 자리에서 세 개 먹은 뒤로 두고두고 나를 놀리는 거였다. 일곱 살이었고 체구도 작았으니 계란 세 개면 욕심을 좀 내었던 것도 같다.

ⓒ심혜진.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부모님이 3~4일 집을 비우셨다.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몇 달 후 시골에서 인천으로 이사 갈 예정이었다. 엄마는 자잘한 귤 한 박스를 세 등분해 검은 비닐봉지에 각각 담았다. 각자 한 봉지씩,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먹을 간식이었다.

부모님이 나가신 후 내 몫의 봉지를 열었다. 마흔 개가 조금 넘었다. 귤 하나가 통째로 입에 들어갈 만큼 작고 귀여웠다. 속껍질도 얇고 무지하게 달았다. 한 개 두 개…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반이나 사라진 상태였다. 언니와 동생은 난리가 났다. 나중에 자기들 몫을 내가 빼앗아 먹을 거라는 거다.

그날 저녁, 속이 매슥거려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배를 문질러 봐도 소용이 없었다. 걸레가 담겨 있던 통에 입을 대고 헛구역질을 했다. 언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내 등을 두드리는 건지 때리는 건지 하여간 세게 쳤다. 씹지도 않은 귤이 통째로 나왔다.

나한테 폭식증이 있었나? 그 이전, 이후로 비슷한 일이 없었던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번 그 이유를 곱씹었다. 내가 정리한 건 대략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많은 양을 자율적으로 먹은 경험이 별로 없었다. 주어진 대로 먹다보니 내 양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처음 주어진 자유 앞에 통제가 잘 안 됐다. 두 번째, 위가 배부르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너무 빨리 먹어 배부름을 인지하지 못했다. 씹지도 않고 삼킨 게 그 증거. 세 번째, 언니와 동생 말이 맞았다. 얼른 내걸 먹어치우고 두 사람 것을 빼앗아 먹을 심산이 있었음을 인정. 네 번째, 아마도 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나는 귤이 좋다. 씹지도 않고 삼킬 만큼, 빼앗아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 칼로 자르지 않아도 되고 달콤하고 씨도 없고 먹기가 편하다.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향긋하다. 내가 주황색을 좋아하는 건 귤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렌지가 흔해지고 고급스러운 황금향이 나와도 귤만큼 편하고 맛있고 싼값에 먹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귤 사랑이 멈추지 않는 만큼 귤 욕심도 한결같다.

큼직한 박스를 몇 개 구해 베란다에 늘어놓고 귤이 서로 닿지 않게 흩어놓았다. 막 수확한 귤은 서로 닿을수록 썩기 쉽다. 아마 또 며칠 후면 저 귤 중 몇 개는 얇게 잘려 건조기 안에서 마르고 있겠지. 해마다 만드는 귤 칩 또한 귤 욕심의 결과다. 잘라서 그냥 말리기만 한 건데 바삭하고 향긋하니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만일 아무리 먹어도 남는 귤이 있다면 얇게 자른 귤을 소쿠리에 담아 햇볕 좋은 날 바싹 말려보길 권한다. 새로운 맛의 향연에 빠지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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