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SNS에 잡채 사진을 올렸다. 거무스름한 빛깔에 윤기가 돌고 당근과 푸른 잎채소가 섞여 먹음직스러웠다. “호기심에 구매. 먹을 만함” 지인이 올린 글을 보니 비빔라면처럼 면을 삶고 소스를 부어 비빈, 인스턴트 잡채였다. 맛보고 싶다는 기대와 공감의 댓글이 순식간에 서른 개가 넘게 달렸다. 나도 ‘하트’를 꾹 눌렀다.

다음날 동네 슈퍼에서 그 인스턴트 잡채를 샀다. 마음은 기대 반, 실망할 준비도 반. 면과 건더기를 삶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뺀 뒤 소스와 참기름에 버무렸다. 단맛이 강하긴 했지만 맛은 그럴싸했다. 새삼, 처음 잡채를 버무려보았던 때가 생각났다.

ⓒ심혜진.

20여년 전 내가 대학생일 때 엄마는 장난감 공장에서 일했다. 그 공장은 선물이 많이 필요한 어린이날과 명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특히 바빴다. 어느 추석연휴 전날, 특근을 하던 엄마가 내게 전화했다. 어젯밤 잡채를 하려다가 양파가 없어 중단했다며 내게 마무리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밤 열한 시에나 일이 끝날 것 같다면서. “그냥 양파 볶고 당면 삶아서 냉장고에 있는 나머지 재료들 넣고 양념으로 버무리면 돼. 그것만 해줘”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양파와 몇 가지 재료 손질을 해보았을 뿐, 반찬을 만들어본 일은 없었다. 게다가 명절 음식이라니. 겁이 났지만 웬만해선 일을 시키지 않는 엄마가 오죽하면 이런 부탁을 하실까 하는 생각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양파를 사와 그 중 큰 것 두 개를 썰었다. 햄버거 가게에서 익힌 칼솜씨가 제법 쓸모가 있었다. 어찌어찌 양파를 볶고 당면도 한 봉지 모두 삶았다. 엄마는 양파가 식을 동안 삶은 당면에 먼저 간을 맞추라고 했다. “잡채 맛 알지? 그 맛이 나오게 조금씩 넣어봐. 한 번에 많이 넣지 말고” 간장 조금, 설탕 조금, 참기름 쬐끔. 아무 맛이 안 났다. 다시 한 숟갈 씩. 이제 참기름 향은 충분하니 그만 넣어도 될 것 같다. 간장을 꽤 넣었는데도 간이 안 맞는다.

다시 간장, 설탕, 간장, 설탕… 간장병을 스무 번도 넘게 들었다 놨다 했나보다. 맛은 겨우 비슷하게 맞췄지만 색깔이 영 나지 않았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엄마가 준비해둔 당근과 시금치나물, 볶은 고기를 꺼냈다. 재료들을 다 섞고 통깨를 뿌렸다. 한입 먹어보니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영 밍밍한 것 같기도 했다. 당장 내일 식구들이 먹을 텐데 맛이 없으면 어쩌나. 설거지를 하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열두 시가 다 돼 집에 온 엄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달에 특근을 많이 했으니 월급도 많을 거란 거다. 엄마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잡채를 집어 입에 넣어 주었다. “응 됐어. 간 잘 맞췄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다음 날 내가 버무려 놓은 것을 다시 프라이팬에 볶았다. 엄마가 뭔가 양념을 더 넣는 것 같긴 했다. 어쨌든 맛은 좋았다.

먹는 사람 입장에선 잡채만큼 흔하고 평범한 것도 없지만 만드는 사람에겐 그렇게 만만한 음식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어딜 가든 잡채가 상에 오르면 ‘이 번거로운 걸 하느라 얼마나 바쁘게 손을 움직였을까’ 하는 생각부터 한다. 그리고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잡채가 왜 명절마다 올라야 하고, 엄마는 이어지는 야근 속에도 잡채를 하기 위해 오밤중에 칼을 들어야 했는지, 나는 또 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먹기만 했는지, 아쉽고 안타깝다.

그런데 이제 10분이면 라면 두 봉지 값에 잡채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다. 그 어려운 걸 해낸 기업에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 한편으론 그 긴 과정을 이토록 간단하게 줄여버린 것이 허무하기도 하다. 잡채 한 접시에 녹아든 누군가의 노동까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지워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가려진 노동, 그림자 노동은 그래서 어렵고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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