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일본의 문부과학성 앞에서는 ‘고교 무상화를 조선학교에도 적용하라’는 재일동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금요행동’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5월부터 이어오고 있다. 재일동포들은 왜 ‘조선학교도 고교 무상화’를 외치고 있는 걸까.

조선학교의 역사는 약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의해 끌려오거나, 유학을 왔다가 고국으로 못 돌아가거나, 한반도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피난 온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국어강습소’가 조선학교의 모태다.

고국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모아 자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국어강습소다. 이 국어강습소가 조선학교로 발전했고, 일본 각지에 흩어져있던 동포들의 노력으로 1946년엔 조선학교 500여개를 만들었다. 학생 수가 약 4만 5000명이나 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찍이 조선학교를 탄압했다. 지금 남아있는 조선학교는 탄압에 맞서 싸우며 민족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학생들이 자라 지켜온 학교다.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일본정부의 탄압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2003년에 대입수험자격에서 조선학교만을 제외시킨 데 이어, 2010년부터 실시한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도 조선학교만을 제외했다.

이에 오사카ㆍ후쿠오카ㆍ도쿄 등의 조선학교에선 일본정부를 상대로 고교 무상화 불지정 처분 취소를 청구했다. 하지만 오사카에서 1심 승소한 것 외에는 모두 패소했다. 게다가 오사카 또한 2심에선 패소했고, 지난 10월 30일 열린 도쿄 2심 재판에서도 패소했다.

재판부는 고교 무상화 지원금이 북한정부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조선학교 이야기에 왜 북한정부를 들먹이는 걸까. 조선학교의 역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조선학교가 있기까지 동포들의 단결된 힘도 중요했지만, 북한의 지원도 한몫 했다. 한국전쟁 이후 상황을 수습하고 남북 간 체재 경쟁이 한창이던 그때부터 북한은 재일동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왔다. 이에 반해 남한 정부는 안타깝게도 재일동포 문제를 외면했다.
그렇기에 조선학교는 북한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드는 마음 아닌가. 그러나 일본 사법부는 이를 빌미로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조선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한정부도 나서야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일본정부는 계속해서 저 유치한 주장과 탄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리도 조선학교의 금요행동을 함께 하자며 2014년 12월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금요행동을 해오고 있다.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는 첫 시작을 이 금요행동에 함께 해보는 걸로 하면 어떨까.

조선학교 학생들의 부모와 조부모 대부분의 고향은 남한 지역이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남한정부가 오랜 기간 조선학교 문제를 외면해왔음에도, 조선학교 학생들은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하나 된 조국 아래서 고향에 살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하루빨리 통일을 이워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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