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29
우르겐치, 굴두순 카라와 갸오르 카라

사막 속에서 만난 이동가옥 유르타. 나그네들의 시원한 식당이다.

새벽 5시. 모닝콜은 여지없이 울린다. 호텔의 안락한 잠자리를 두고 또다시 열사의 용광로를 헤집고 나갈 생각에 몸은 자꾸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뿐, 미지의 세계는 곧 신선함으로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뜨게 만든다.

타쉬켄트 국내선 공항은 새벽이 붐빈다.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도시로 가는 항공편이 주로 아침에 있기 때문이다. 공항 2층 작은 스낵바는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기가 쉽지 않다. 커피로 충전하고 호라즘 지역의 중심 도시인 우르겐치로 가는 30인승 프로펠러기에 오른다.

프로펠러기가 롤러코스트처럼 솟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승객들은 태연자약하다. 아니 음식을 먹으며 서로 떠들어대는 것이 즐기는 것만 같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고 키질쿰(=빨간 모래) 사막 위를 낮게 비행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를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는 기분이다.

7월 중순의 호라즘은 오전부터 불볕이다. 섭씨 46도. 사막 사이로 난 길은 80도에 육박한다. 공항에서 산 생수는 체온처럼 뜨끈하다. 그래도 감사할 뿐이다. 도로는 사막을 가로지른다. 미풍도 없는 햇빛 때문인가. 사막 길은 단조롭고 늘어지기만 한다. 자동차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폐허인 채로 목동들의 놀이터가 된 호라즘의 카라.

땡볕에 흐늘흐늘해진 뱀 같은 길. 헐떡이며 미끄러져 빠져들고 있다.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그러기엔 온 길이 너무 멀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자동차 곁을 샥사울 나무의 날카로운 가시가 부딪힌다. 소나기는 언제 왔을까. 도로엔 물기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물기가 아니다. 태양이 만들어낸 신기루. 순간, 끝없이 자욱한 아지랑이가 현기증으로 다가온다. 이제 꼼짝없이 키질쿰 사막의 최면에 걸린 것이다.

고대 실크로드 대상(隊商)이 떠오른다. 그들은 이러한 현상을 겪으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을 떠올렸을까. 부귀영화, 사랑, 어머니였을까. 아니면 고향 언덕 푸른 하늘이었을까. 가도 가도 멈춰 있는 길.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가. 한 번뿐인 짧은 삶, 이 죽음의 땅에 어떤 가치가 숨어 있던가.

서기 1216년. 칭기즈칸은 호라즘 왕의 사신과 이슬람 상인을 접하고 서역과 교역하기 위해 사신과 함께 많은 물건을 실은 상인들을 보냈다. 그러나 호라즘의 동방 총독인 오트라르 성주 이날추크는 상인들을 습격해 몰살하고 물건을 약탈했다. 칭기즈칸은 동서를 오가며 장사하는 대상(隊商)들을 중요시해 보호했다. 칭기즈칸이 보낸 사절단이 약탈과 몰살을 당했다는 것은 곧 전쟁을 의미하는 것. 그는 호라즘 왕에게 사신을 보내 동방 총독을 인도해주면 우호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호라즘 왕은 이를 거절하고 사신마저 사형에 처했다. 칭기즈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급기야 세계사에 유래 없는 핏빛 원정이 시작됐다. 1219년의 일이다.

통한의 전설이 서린 굴두순 카라.

호라즘에서는 성(城)을 ‘카라(KALA)’라고 부른다. 당시 우르겐치는 아무다리야가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로 호라즘의 수도였다. 현재도 카라 40여개가 발견됐으니 13세기 초에는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원정이 있은 후, 카라는 모두 폐허로 변했다. 성곽은 강물의 흐름이 바뀌고 인적이 끊어져 더욱 빠르게 부서지고 무너졌다. 게다가 급격한 사막화는 카라의 흔적마저 찾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사막 초입에 성 하나가 보인다. 굴두순 카라다. 굴두순은 호라즘 왕의 공주 이름이다. 분노한 칭기즈칸이 호라즘을 정벌할 때, 이 성에 굴두순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공주는 칭기즈칸의 큰 아들인 주치를 사랑했다. 이를 안 칭기즈칸이 성을 공격하지 않고 포위했다. 성 안에 식량이 바닥났다. 칭기즈칸의 공격을 걱정한 성주는 꾀를 내어 소에게 여물로 밀을 잔뜩 먹여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를 안 공주가 주치에게 화살을 쏘아 ‘성 안에는 하루치 식량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성은 함락됐고, 공주는 기쁘게 주치를 만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공주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부모를 배신한 자, 남자도 배신할 것이다’가 그 죄목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와 나라를 적에게 내어준 그녀는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우리의 낙랑공주 이야기와 비슷한 전설이다.

이슬람인들의 안식처로 변한 미즈다칸 카라.

또 다른 성인 미즈다칸 카라는 성터의 흔적은 고사하고 아예 공동묘지로 변해있다. 빼곡하게 늘어선 공동묘지를 보며 이곳이 정녕 성이 있던 곳인지 의심하게 한다. 왼쪽으로 1㎞ 전방에 또 하나의 성인 갸오르 카라의 흔적이 보인다.

이 두 성에도 이야기 하나 전해온다. 미즈다칸과 갸오르는 왕자들의 이름이다. 이들은 서로 왕좌를 놓고 번번이 다퉜다. 급기야는 왕권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이 싸움에서 동생인 갸오르가 승리했다. 갸오르는 형이 있던 성을 공동묘지로 삼았다. 대대로 패배감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호라즘을 정벌하러온 칭기즈칸이 이 사실을 알았다. 그는 미즈다칸 카라는 그냥 두고 갸오르 카라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미즈다칸 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슬람인의 안식처가 돼 오늘도 찾는 이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정작 왕권 쟁탈전에서 승리한 갸오르 카라는 먼지와 바람뿐, 찾는 이 없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찌하겠는가. 오직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살아야만 할 것이리라.

칭기즈칸에 의해 폐허가 된 갸오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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