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제주에 다녀왔다. 엄마의 60대 마지막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내게 올레길이 있는 제주는 더 바랄 것 없는 여행지다. 하루 예닐곱 시간을 걸어야하니 짐은 최소한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엄마의 가방을 잠깐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궁금해 하는 내게 엄마는 “별 거 없다”며 딴청을 부렸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고 나니 한 시간이 남았다. “뭐 먹을래?” 엄마가 껍질을 벗겨낸 큼지막한 감 두 개를 내밀었다. “세상에, 이거 때문에 무거웠구나” 감은 두 쪽밖에 먹지 못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심심한데 땅콩 먹을래?” 땅콩 포장지에 적힌 무게는 무려 300그램. “제주에서 밥 대신 땅콩만 먹어야겠는데?” 내 농담에 엄마는 그럴 리가 있냐는 듯, 쿠키 세트와 과자 봉지들을 줄줄이 꺼냈다. 황당한 나와 달리 엄마는 마냥 해맑았다. 이건 슬프고도 잔인한 데자뷰다.

ⓒ심혜진.

3년 전 초가을, 시아버지 칠순을 맞아 시댁 식구들과 제주에 갔다. 고향이 전남 진도인 시댁 식구들은 해산물 귀신들이라 제주의 싱싱한 먹거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첫날 점심은 공항 근처에서 간단하게 먹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해산물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잠시 쉬는 시간, 과묵하신 어머님이 크고 무거운 가방 하나를 식구들 앞에 내놨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찰밥과 묵은지, 머리고기, 홍어였다. 삶은 밤과 배도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식구들 앞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묵을 것도 없이 무신 놀러를 간다냐. 묵을 게 있어야제”

열한 명이 둘러 앉아 찰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평소와 달리 무척 고요했다. 적당히 쫀득한 찰밥, 참기름 양념을 한 묵은지, 잘 삭은 홍어, 여기에 머릿고기까지, 남다른 음식 솜씨를 가진 어머님의 음식들은 최고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라면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사라졌을 홍어가 자꾸 목에 걸렸다. 제주 음식을 먹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뭔가 울컥하면서도 안쓰러운 감정이 자꾸 올라왔다. 최선을 다해 먹었지만 모든 음식이 많이 남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똑같이 먹었다. 그제야 겨우 절반이 사라졌다.

그 음식들은 여행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감귤주스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어머님은 삶은 밤을 손에 쥐어주셨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도록 그 음식들을 다 먹지 못했다. 남은 건 남편 손에 쥐어졌고, 제주에서 돌아온 저녁에 다시 그 음식을 먹었다. 더운 날씨에도 전혀 상하지 않은 게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또 다시 제주에서 그 ‘어머니’를 마주했다. 사실 엄마는 쿠키나 과자를 전혀 드시지 않는다. 그러니 엄마 가방에 든 과자들은 오로지 내 몫일 터. 생각해보니 엄마는 식구들과 어딜 갈 때면 늘 뭔가를 챙겼다. 떡일 때도 있었고 말린 고구마, 삶은 계란일 때도 있었다.

여행길에서도 식구들 먹을 것을 챙기려는 또는 챙겨야한다고 믿는 이 ‘어머니들’을 찬양할 수도, 동정할 수도, 마냥 감사하게만 여길 수도 없어 서글펐다. 엄마의 일방적 희생과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으나 뒤늦게 그것의 부당함과 폭력성을 깨달은 내게, 여전히 이어지는 그 행위, 그 생생한 가부장의 현장을 낯선 여행지에서까지 목도하는 건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와 여행하는 건 내게 즐겁고 소중한 일이라고. 여행길에서만큼은 엄마와 딸이 아닌 여행의 동반자로서 동등하게 즐거웠으면 한다고. 그리고 덜 힘든 사람이 더 힘든 사람의 짐을 나눠가지면 좋겠다고. 그러니 엄마 가방 속 땅콩과 쿠키는 내가 짊어졌으면 한다고. 앞으로 우리, 바람처럼 가벼운 배낭을 메고 제주의 모든 올레길을 차례로 걸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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