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도미닉 쿡 감독│2018년 개봉

1962년 영국.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인 체실 비치의 한 호텔에 젊은 남녀가 도착한다. 호텔까지 가는 해변을 걸으며 남자는 로큰롤의 기타 코드를 말하고, 여자는 장3도 단3도 화성학으로 답한다. 뭔가 조화롭지 못한 대화, 잔뜩 긴장한 얼굴, 그럼에도 주문처럼 ‘아이 러브 유’를 남발하는 남녀는 방금 전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 플로렌스(시얼사 로넌)와 에드워드(빌리 하울)다.

신혼 ‘첫날밤’인 만큼 두 사람은 어색하지만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며 ‘진도’를 나가려 애쓰지만 여의치가 않다. 룸서비스로 이른 만찬을 가져온 호텔 직원의 서비스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간신히 만들어놓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망치고, 원피스 지퍼는 옷자락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서툰 둘에게 첫날밤은 아무래도 미션 임파서블이다.

사실 두 사람은 처음 만날 때부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클래식을 전공한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는 가문과 배경을 따지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어머니와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고, 역사학 전공인 에드워드는 썩 넉넉지 않은 집안에 뇌손상으로 기이한 행동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신에 대한 불안함과 열등감을 안고 성장한 촌놈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성 관계에 서툴다는 것. 그러나 연애할 때에는 그 서투름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했다. 서로 다른 취향과 고지식함에 끌렸다.

깊이 사랑했지만 ‘선은 넘지 않던’ 고지식한 커플. 막상 결혼하니 결혼 전에는 하지 말아야 했던 섹스가 당연히 ‘치러야’하는, 고지식한 완벽주의자 커플에게는 심지어 ‘잘하기까지 해야 하는’ 임무가 된다. 그 순간 단단하기만 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균열되고, 새로운 시작이 될 줄 알았던 체실 비치는 둘의 마지막 장소가 된다.

신혼 첫날밤 첫 섹스에 실패(?)한 커플이 파국을 맞는다는, 삼류잡지에 가십으로나 실릴 것 같은 다소 시시한 줄거리지만, 도미닉 쿡 감독의 ‘체실 비치에서’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이별을 통해 ‘사랑이란,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꽤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첫 섹스를 위한 시도에서 덜컥덜컥 걸리는 순간은 그들 각자의 상처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문 밖에서 낄낄거리는 호텔 직원의 웃음소리에 시도 때도 없이 웃어대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불안과 열등감을 느끼는 에드워드. 옷을 벗기는 남편의 손길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했던 성폭력 피해를 떠올리는 플로렌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잘해내야한다’는 강박까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삽입 이전에, 애무 이전에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았다.

체실 비치는 해안의 위치에 따라 자갈의 마모 정도가 다 달라서 캄캄한 밤에 바닷가에 닿아도 어부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셀 수 없이 많은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자기만의 크기를 만든 자갈들이 있었기에, 그 자갈이 깔린 해변에 수없이 배를 댔을 어부들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첫 섹스의 실패는 단지 서투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해보면 된다. 혹은 성장과정의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섹스의 어려움을 서로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가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체실 비치의 자갈이 되길 거부한다. 첫 섹스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곧장 관계를 의심하고 자신을 의심한다. 파도와 부딪쳐 보지도 않고 실패로 결론을 내버린다.

섹스를 기능과 기술의 문제로만 인식하면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처럼 ‘잘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조루나 불감증 따위의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섹스는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또 다른 ‘과정’이다. 체실 비치의 자갈처럼 파도에 마모되는 과정과 시간 없이 앎은 불가능하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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