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문화재단, 계간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

인천에서 발행하는 계간 <황해문화>가 100호를 발간했다. 지난 1993년 겨울호로 창간해 2018년 가을호로 100호를 맞이했다. 25년의 세월이다. 황해문화는 100호 특집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에 주목했다.

지난 4월의 남북정상회담과 6월의 북미정상회담은 한국사회의 오랜 반공 이데올로기 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 하나의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이번 100호 특집은 지난 6월 29~30일 인하대학교에서 <통일과 평화 사이, ‘황해’에서 말한다>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 심포지엄은 《통일과 평화 ‘사이’의 사상들을 잇다》, 《분단 경계에서 통일과 평화를 잇다》 그리고 《섬, 갈등적 변경에서 평화교류의 관문으로》 등 세 개 섹션으로 구성됐고, 국내외 20여 명의 석학들이 각 섹션별 주제를 토론했다.

황해문화 100호는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 “분단극복과 한반도 평화는 또 다른 국민국가체제의 형성을 전제한 새로운 세계체제의 전개가 아니라 국민국가체제를 넘어서는 탈근대적 세계체제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황해문화 100호 표지

특집Ⅰ 통일과 평화 ‘사이’의 사상들을 잇다

왕후이(汪暉,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는 ‘동북아 평화의 계기로서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글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에 남과 북이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해나가는 주동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 동북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흔히 냉전의 종식이라고 일컬어지는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종식되지 않은 냉전의 연장이었던) 탈냉전 시기인 1990년대 이후 동북아시아 지역의 구도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정당하다고 여기는 동안에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찾기 어렵다.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이 남북한 양측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상황에서 투명한 국제적 틀을 통해 진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자이자 ‘아시아-태평양 저널(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의 편집자로서 그간 동북아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마크 셀던(Mark Selden, 코넬대학교) 교수는 ‘전쟁에서 평화로 :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례를 국가, 지역, 그리고 지구적 시각으로 보다’라는 글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는 트럼프가 주장하듯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CVID) 폐기하면 미국이 체제를 보장하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항복할 리도 없고, 최근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 등의 사례를 볼 때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도 안정적이지 않으며, 불투명하고 변덕스럽”고 지적했다.

마크 셀던 교수는 또 동북아의 상황에 대해 유럽과 달리 정치가 아니라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경제협력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충돌을 해결할 만한 정치적, 제도적 통합체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 중립국 통일론과 주한미군’이란 글을 통해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을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에 대해 미국이 과거에 이미 공식적으로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검토했던 제도였다고 했다.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시아가 만드는 세계 : 38미터의 관계학에서 신시대 평화연대로’라는 글을 통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시진핑의 중국몽이라는 G2의 대결구도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특집Ⅱ 분단 경계에서 통일과 평화를 잇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분단의 바다가 협력의 가교가 되는 날’이란 글에서 남과 북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현장이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판문점선언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이 그동안 일관되게 부정했던 ‘서해북방한계선(NLL)’ 용어를 인정하면서 평화수역화 논의에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적어도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NLL이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온 역사적 현실을 수용하여 남측과 협력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NLL 수역이 협력의 가교가 되는 날 북한은 그동안 자신을 상징했던 또 하나의 부정적 이미지였던 ‘변경(邊境) 혹은 경계적 존재’를 탈피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NLL일대가 평화수역화되고 남북협력이 이루어지면 분단과 분쟁의 바다가 평화의 바다로 전환됨으로써 남북한과 중국이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경제활력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냉전·분단 경관과 평화 : 군사분계선 표지판과 철책을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군사분계선과 DMZ의 철책과 전망대라는 냉전의 경관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시각적 경험을 통해 분단을 철저하게 내재화해왔는지를 인식하게 했다. 그는 국경과 다른 분단국가의 경계인 분경(分境)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분경이 국경보다 더 물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공고한 경계선이었다고 했다.

한모니까 서울대 교수는 ‘수복지구와 신해방지구, 분단의 경계지역에서 통일·평화의 시험지역으로’라는 글을 통해 수복지구와 신해방지구라는 두 특수한 지역의 사례를 설명하며 한반도 통일 이후 생겨날 문제들을 고찰했다.

수복지구는 한국전쟁의 결과 남한이 편입한 과거의 북한지역이고, 신해방지구는 한국전쟁 전 남측이었다가 전쟁 후 북한이 점령한 지역이다. 수복지구는 현재 남측 강원도 북부지역이고, 신해방지구는 개성과 황해남도가 해당한다. 두 지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교차 경험한 냉전의 최초 체제 전환 사례에 해당한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개성공단 : 날마다 평화와 통일이 만들어지던 기적의 공간’을 통해 한국사회가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북맹’ 상태라고 강조하며, “적대적인 분단체제는 우리에게 북한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봉쇄했다”고 지적했다.

강주원 서울대 선임연구원은 ‘망각되는 10여 년과 잃어버린 10여 년이 얽히고설킨, 또 하나의 국경 : 남북 교류의 중심축이자 거울인 중국 단둥(丹東)’을 통해 북중 국경 지대인 중국 단둥 이야기를 전했다. 개성공단은 중단됐지만, 중국 단둥에서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남북 간의 교류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특집Ⅲ 섬, 갈등적 변경에서 평화 교류의 관문으로

특집Ⅲ은 동북아시아 변경 지역의 섬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까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와 섬으로 눈을 돌렸다. 그동안 주로 황해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지역 위주로만 아시아를 사고해온 한계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 호주국립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일본 문제 : 속국주의Clientelism와 아베 정부’를 통해 오늘날 일본과 아베 정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매코맥 교수는 일본이 패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된 1951년부터 미국에게 예속되는 것을 받아들였으며, 이후 일본의 정치는 추종노선과 자주노선 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자주노선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적극적인 노선이며, 추종노선은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삼고 오키나와 주일 미군에게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노선이라고 부연했다.

전후 일본은 주로 추종노선 세력이 집권했는데, 아베는 우익적 입장에서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위권을 확보하고자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을 추종하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장보웨이(江栢?, 대만사범대) 교수는 ‘평화와 화해 : 진먼과 마쭈의 전쟁지역 역사 및 문화경관 보존이 지니는 핵심 가치’를 통해 타이완 정부가 냉전의 비극적 유산들을 화해와 평화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살폈다.

진먼과 마쭈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 사이의 대결이 가장 첨예했던 곳이었지만 1992년 양안 관계가 개선되고 민간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쟁의 대결 구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장보웨이 교수는 진먼과 마쭈 지역에 냉전 시기 건설되었던 다양한 군사시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시민사회를 주체로 하여 전쟁을 반성하고, 반성과 평화 추구를 기조로 하여 진먼·마쭈가 진정한 ‘포스트 전쟁지역’의 역사로 들어서게 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100호 특집에 담긴 우리가 몰랐던 ‘북중 동맹’

황해문화는 100호 특집호의 마지막 편은 북한 얘기다. 6월 100호 특집 국제 심포지엄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초대할 수 없었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또 다른 당사자는 바로 북측이었다.

황해문화는 대신 중국의 대표적인 냉전문제 연구자인 선즈화(沈志?, 상해 화동사범대학교) 교수의 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북중동맹의 본질(1977~1992)’을 특별기고로 게재했다.

선즈화 교수의 글은 북한 문제는 물론 북중관계에 있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그조차도 사실과 다르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매우 많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로 전환한 1977년부터 한중수교에 이르는 1992년에 이르는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한국과 대만처럼 단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북중동맹을 유지하던 기초적 요소들이 와해되면서 매우 심각할 정도로 요동쳤다.

선즈화 교수의 글은 중국의 입장에서 대북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될 것인지,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예측해볼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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