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도 복날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이날 장어요리를 먹는다. 손질한 장어에 간장 양념을 발라 구운 ‘카바야키’가 인기라고 한다. 구운 장어를 밥 위에 올린 장어덮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복날을 앞두고 일본 편의점에 ‘장어 없는 장어덮밥’이 등장했다.

치어를 구하기 어려워 장어가 금값이 되자, 장어 대신 장어 조림용 소스를 밥에 부어 도시락을 만든 것이다. 값은 198엔,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다. 이 ‘장어 소스 맛’ 덮밥은 간단하고 저렴하게 복날 기분을 즐기려는 사람들 손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복날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사실 이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바나나 없는 바나나 우유, 딸기 없는 딸기 우유를 마시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우리가 ‘맛’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 ‘향’이다. 단 맛, 신 맛은 있어도 ‘딸기 맛’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딸기 향’이 있을 뿐이고, 이것을 편하게 딸기 맛이라 부른다.

과일이나 채소는 열매가 무르익을 무렵 특별한 향을 내는 물질을 많이 만든다. 토마토는 씨앗이 익을 때 새큼한 휘발성 화합물을 30여 가지 만드는데 모두 사람에게 꼭 필요한 필수영양소와 관련이 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토마토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화합물 중에서 향을 내는 것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인 반면, 필수가 아닌 수천가지 화합물들은 토마토의 풍미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향을 내는 물질을 포함해 식물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을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이라 한다. 피토케미컬은 몸 안에서 항산화제 역할을 하고 세포 손상을 억제하는 등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물질이다. 식물들이 귀한 에너지로 피토케미컬을 만드는 이유는 경쟁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거나, 미생물과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햇빛과 비바람을 맞고 해충과 싸우며 자란 식물들이 피토케미컬을 많이 생산한다. 유기농산물이 건강에 좋은 이유다. 생장에 써야할 에너지를 피토케미컬 만드는 데 사용하느라 크기가 작고 열매 모양은 볼품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성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은 필요한 영양 성분을 가진 향들을 좋아하게 진화해왔다. 그런데 이 향을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인공향이 대체하고 있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프라는 기구로 향을 내는 성분의 구성 물질(분자)을 알아낸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향을 분해해 재구성하는 데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메틸안트라닐레이트에선 포도향이, 아밀아세테이트에선 바나나향이, 알릴카프로에이트에선 파인애플향이 난다는 것쯤은 식품업계 기초 상식이다.

조향사들은 온갖 화학물질들로 향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에틸부티레이트로 생기 있는 과일 향을 첨가하고 시스-3-헥세놀로 풋풋한 풀 향을 더한 뒤 퓨라네올로 딸기 솜사탕 같은 달달한 향을 추가한다. 시스-3-헥세놀과 퓨라네올이 각각 활성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차로 생긴 맛의 공백은 복숭아 향이 나는 감마 데칼락톤으로 채우는 식이다.

이 합성 향들을 첨가한 식품은 상큼하고 달콤한 향으로 입안에서 군침이 돌게 할 것이다. 과일 향은 원래 비타민과 피토케미컬이 있다는 신호이지만, 합성 향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먹거리에서 정말 필요한 영양성분을 찾기는 힘들다.

숯불 향이 나는 화학물질로 양념한 질 낮은 불고기, 고기 향을 내는 조미료로 맛을 낸 미역국, 게 향이 들어간 게맛살튀김이 우리 식탁과 아이들 식판에 오른다. 누룽지 향을 첨가한 사탕과 메론 향 아이스크림은 흔한 간식이다. 부족한 영양은 과식을 부르고 과식은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 값 싼 향으로 범벅된 음식을 좇는 사이 우리에게 필요한 향을 찾는 능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 것의 실체를 ‘장어 없는 장어덮밥’이 여실히 보여주는 건 아닌지 씁쓸하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먹고 살고 있는 건지,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참고 자료] EBS 다큐프라임 ‘맛의 배신’, 책 ‘맛의 과학’(밥 홈즈 지음, 처음북스 펴냄)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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