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떡소떡’. 새 울음소리 같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 간식 이름이다. 소시지와 떡을 기름에 튀겨 소스에 발라먹는 것인데, 꼬치에 비엔나소시지와 떡볶이 떡을 번갈아 꽂은 것에서 소떡소떡이란 이름이 나왔다. 한 방송에 나온 뒤부터 휴게소마다 이걸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다고 한다.

떡과 소시지, 무척 익숙한 맛이다. 그 둘을 같이 먹어봤자 원래 알고 있는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또 다른 뭔가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열광적이다. 나는 그 맛이 궁금하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그때 그 맛보다야 덜 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30년 전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식구들과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2박 3일 일정에는 친척집에 방문하는 것 이외에 남산타워에서 케이블카 타는 것도 잡혀 있었다. 하지만 내 정신은 완전히 다른 데 가있었다. 아빠가 서울에 가면 돈가스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이 하나 둘 돈가스 먹어봤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정말 궁금했다. 맛은 둘째 치고, 스프와 접시에 놓인 고기를 1인당 하나씩, 눈치 볼 필요 없이 각자 칼로 썰어먹는 호사를 직접 누려보고 싶었다. 경상도의 작은 마을엔 돈가스 파는 곳이 없었다. 서울에 가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근사한 곳에서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칼로 고기를 썰어 먹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친척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남산타워에 갔다. 정작 올라갈 땐 계단을 이용했고 내려올 때에야 케이블카를 탔다. 입구에 있던 케이블카 타는 곳을 못 보고 지나친 탓이다. 그런데 아빠는 돈가스 집도 쉽게 찾지 못했다. 사실 ‘돈가스 팝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유리문에 붙여둔 밥집은 많았지만 아빠도 나처럼 어딘가 ‘돈가스 집’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심혜진

일반 밥집에서 파는 돈가스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햄버거처럼 뭔가 ‘가짜 맛’이 날 것 같았다. ‘진짜 돈가스 집’을 찾아 헤매다 해가 저물었다. 결국 그날 저녁은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돈가스 대신 짜장면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엄마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대로 돈가스를 먹을 수 없다니. 나는 눈물을 꾹 참으며 볶음밥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서울 가서 돈가스 먹을 거라며 친구들에게 잔뜩 자랑까지 했는데, 한숨만 나왔다. 총알처럼 빠를 줄 알았던 기차도 느려 터지고, 돈가스도 못 먹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었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잔뜩 실은 수레가 기차 통로를 지나갔다. 부모님은 바깥에서 우리에게 간식거리를 사주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그런 엄마가 수레를 멈췄다. “너희 먹고 싶은 거 사. 돈가스도 못 사줬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후랑크 소시지였다. 엄마는 소풍 김밥 쌀 때를 빼곤 햄이나 소시지를 단 한 번도 밥상에 올린 일이 없었다. 도시락 반찬으로 분홍소시지도 아닌 후랑크 소시지를 싸오는 건, ‘좀 사는 집’에서나 가능했다. 나는 한풀이라도 하듯, 비싼 후랑크 소시지를 덥석 집었다. 커피땅콩을 고른 언니와 초코과자를 집어든 동생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거침없이 포장지를 벗기고 소시지를 베어 물었다. 얇고 질긴 속 비닐이 먼저 씹혔다. 비닐도 먹는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맛이 없어 뱉었다. 데우지도 않고 소스도 바르지 않은 소시지를 입 안 가득 넣고 우걱우걱 먹는 맛. 돈가스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던 그때,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소시지는 큰 위로였다.

최악의 순간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참 다행이다. 이미 사라진 돈가스에 미련을 두기보다 눈앞의 소시지에 집중하기. 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마흔이 넘은 지금의 나보다 그날의 어린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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