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29|

몇 해 전 가을, 계양구에 있는 한 학교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 공사는 소음과 분진, 안전 등의 이유로 방학 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현장은 교실 반 칸짜리 상담실이었다. 일주일도 안 걸리는 작은 공사라 학기 중이지만 그냥 진행하기로 학교 측과 미리 협의했다. 시끄럽고 위험한 목공사, 냄새가 심하게 나는 칠 공사는 주말에 몰아서 끝낸다는 것이 전제였다. 계획을 세우고 날짜별로 투입할 작업인원을 미리 맞춰놓았다.

공사 첫 날, 늘 보는 목공팀장의 SUV 차량을 반갑게 맞이했는데 이게 웬걸, 팀장 혼자 내리는 게 아닌가?
“아니 형님, 왜 혼자 오소. 두 명 오기로 철떡 같이 약속해놓고”
“김 부장, 사정이 그렇게 됐어. 앞 현장 일이 도저히 마감이 안 돼 노씨 형님 남겨두고 나만 왔네. 여기 나 혼자 이틀하면 안 될까?”
“절대 안 돼요. 내일 페인트를 해야 하니까 목공은 오늘 무조건 마쳐야한다고요”
“진짜 안 돼? 그럼, 나 혼자 해보지 뭐. 대신 김 부장이 좀 거들어줘야 해”

우리 회사와 같은 작은 인테리어업체는 설계와 공사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정직원으로 보유하고, 공정별 작업은 프리랜서 기술자들을 그때그때 투입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원하는 날짜에 해당 기술자 시간이 잘 맞으면 다행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 탓에 가끔씩 이렇게 일이 꼬이기도 한다. 우리 현장에서도 일을 하다보면 계획보다 하루나 이틀 늦어지는 경우가 있는지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목공팀장을 타박할 수만도 없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그날 목공작업은 결국 목공팀장과 나 둘이서 새벽 1시까지 쉼 없이 몰아붙인 끝에 겨우 완료했다. 그리고 서너 시간 눈 붙인 다음 목공팀장은 다음 현장으로, 나는 그 현장으로 다시 출근했다.

업무성격을 따져보면 사업주라기보다는 노동자에 가까운 화물차 운전기사나 학습지 방문교사처럼 소규모 건설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은 거의 각자가 사장이다. 사업자등록을 하고 상호가 있으면(그렇다 해도 대개 1인 기업이지만) ‘박 사장님’ 하고 부르고, 일용노동을 반복해서 하는 프리랜서라면 ‘최 반장님’ 하고 부르는 차이가 있을 뿐. 몸이 아파서, 다음 현장과 일정 조정이 원활하지 않아서 하루 일을 쉬게 되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 한 번 두 번 개인 사정을 내세워 일정을 지키지 못하기라도 하면 이 바닥에서 ‘찍힐’ 수도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주말이고 밤 시간이고 가리지 않고 우리 같은 인테리어업체의 요구에 맞춰 일을 해준다. 위 사례처럼 때로는 그렇게 요구에 맞춰 하는 작업의 양이 치명적으로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독일 백화점 공사 현장을 우연히 본 인테리어 종사자의 글(https://blog.naver.com/klara98/130174776578)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공사는 업자들 사이에서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영업이 종료된 후인 새벽에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 대형 백화점 체인인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는 가림막과 안전띠만 둘러놓고 영업 중인 낮 시간에 공사하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인 건설노동자도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는 것이 마땅하니, 소음이 있고 먼지 나는 불편쯤은 감수해야한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시행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제도를 잘 설계해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직종의 노동자이든 ‘건강을 잃지 않으면서 사람답게 일할 수 있어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어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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